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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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 도자문화의 배경

여주지역에 도자문화가 발달하게 된 중요한 요인에는 고령토의 존재를 들 수 있다. 고령토의 존재는 고려 때부터 부존사실이 확인, 굴취된 것으로 보인다. 여주시 현암동(예전 북내면) 싸리산[串山]은 예부터 점토, 백토, 고령토 등 도자기원료 생산지였는데, 질이 좋기로 유명해 수토(水土)라고 불렸으며, 조선시대 숙종, 영조, 정조 때 여주의 흙을 한강의 수운을 통해 광주분원에 공급하였다.1)

도자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료뿐만 아니라 번조에 필요한 연료와 제품의 수송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조선시대 여주는 한강의 수운을 통해 서울뿐 아니라 인천을 비롯해 강원도까지 왕래할 수 있었다.

서울과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가 여주를 관통하고, 중부고속도로와 내륙고속도로가 이어진 여주는 중부권의 교통요지가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생산품의 수송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여주의 생산지를 쉽게 방문할 수 있어 생산과 소비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다. 뿐만 아니라 도자기 제작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주변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과 남한강을 낀 수려한 경관이 연계되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서 한몫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14세기 후반 지도층인 신흥사대부들의 실용적인 그릇의 대량생산 요구와 서해남에서 생산되던 청자가 빈번한 왜구의 출몰로 내륙으로의 수송이 어려워지자 요로를 내륙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이 있다.

여주는 한강을 통하여 경강의 양화창, 양화역에 연결되었고, 거꾸로 한양의 다양한 문화가 여주로 들어왔다.2)

현재 여주에 남아 있는 많은 문화유적이 수도 한양의 풍부한 정신적·물질적 문화가 유입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여주는 고려 왕실 이래 많은 황후, 왕비를 낳은 내향이다. 고려왕실의 순경왕후(巡敬王后)에서 조선시대 태종의 태종비(太宗妃) 원경왕후(元敬王后), 고종의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등 조선시대에는 7명의 왕비를 배출하였다. 이러한 여주지역의 풍부한 문화와 한강을 낀 수려한 경관은 여주의 도자기문화가 질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게 한 문화적 바탕이었다. 역사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여주도자기는 그 맥을 이어감은 물론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 필연적인 조건과 세계시장으로의 도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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