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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민예총의 생성

일제강점기 36년간 나라의 주권을 잃은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는 친일(親日)과 반일(反日)로 확연히 나누어져, 친일계열은 조선총독부의 확실한 지원과 보호를 등에 업고 ‘조선미술전람회(약칭하여 선전)’를 중심으로 친일의 2세와 3세를 꾸준히 양성하며 일제의 소위 ‘대동아공영(大東亞共營)’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매국 예술로 번창일로를 달릴 수 있었고, 민족 진영의 반일계열은 일제의 극악무도한 감시와 혹독한 검열을 받으면서 자신의 작품으로 항거하였다. 또한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에 앞장서기도 하고, 주권회복과 민족정신 수호를 위해 투쟁하다가 가난과 투옥으로 일관하였다.

조국 광복의 기쁨도 잠시였고 사회 전반에 걸친 혼란 속에 문화예술계도 외래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과 그에 대한 막연한 선호와 경도, 민족 고유의 정체성 부재로 인한 혼란과 방종, 친일계열 예술인들의 건재 등으로 중심 없이 흔들리며 몇 해를 보냈다. 그러다가 5·16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는 부도덕한 정권을 세운 후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망라하여 ‘한국예총’을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사전검열·왜색 시비·좌경·용공 등의 부당한 논리로 감시하고 통제하여 권력의 시녀로 길들이려 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남북의 관광객과 응원단이 오고 가며 정상간의 만남이 성사되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처참한 암흑의 시대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군부 독재의 억압과 통제 속에 움츠렸던 양심적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문화예술운동의 성과를 대중화하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예술인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사단법인으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약칭 민예총)’을 1988년 12월 23일 창립하면서, 민족문화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민족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선포하였다.

여주는 1995년경부터 민예총 활동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같은 해 9월 이학민·최창석·김남준 등이 중심이 되어 준비 모임을 시작하였고 미술·풍물·문학·연극 등의 모임도 활성화되었다. 1998년 4월 19일 창립 준비위원장에 이학민, 준비위 사무국에 김남준을 선출하여 민예총의 여주군지부 설립을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같은 해 9월 26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여주지부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고석근 시인을 초대 지부장으로, 김남준을 초대 사무국장으로 선출하고, 10월 11일에는 군민회관 광장에서 창립기념예술제를 성대하게 치렀다.

당시 여주에는 문학·미술·사진 등에 분야별 소모임이 더러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 세력이 미미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민예총 여주지부의 출범은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첫번째 행사에는 많은 동호인과 일반 관중들이 참석하여 민예총의 출범을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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