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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

1885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H. D. Apenzeller)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선교사업이 시작되었다. 개신교는 천주교와는 달리 구미열국과 수호조약을 맺은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전파는 매우 순조로웠다. 이 같은 초기 역사는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이후 개신교의 확산은 매우 빨랐다. 개신교는 초창기부터 육영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선교사뿐만 아니라 많은 신도를 배출할 수 있었다. 특히 해방 이후 미국에서 대거 귀국한 정치인들은 개신교에 대한 호감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개신교에 우호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개신교도들의 성경은 이보다 빨리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816년(순조 16) 미국함장 홀(Basil Hall)에 의해 백령도와 청도에 들어온 적이 있다. 50년 후인 1866년(고종 3) 토마스(R. J. Thomas) 목사는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평양에 와서 성경을 전했으나 순교했다.

성경 번역도 매우 빨랐다. 임오군란 때 수신사 박영효(朴泳孝) 일행을 따라 일본에서 유학하던 이수정(李樹廷)은 성경을 번역하는데, 그것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가지고 들어온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백홍준(白鴻俊), 이응찬(李應贊), 이성하(李成夏), 김진기(金鎭基)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때는 1876년(고종 13)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7년(고종 24) 9월 문을 연 장로회의 ‘새문안 교회’이다. 이후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가 설립되었다. 그 밖에도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의사인 스크랜튼(W. B. Scranton)과 그의 어머니는 188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을 만들었으며, 배어드(W. A. Baird) 박사 등은 1897년 평양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숭실대학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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