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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역사

개신교는 구교인 천주교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켜 세운 그리스도 교단으로 ‘가톨릭’에 대항한 ‘프로테스탄트’이다. 개신교는 기독교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한역(漢譯)인 ‘기독(基督)’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천주교도 ‘기독의 교’ 곧 ‘그리스도 교’에 속한다. 때로 천주교에서도 집회장소를 ‘성당(聖堂)’이 아닌 ‘교회(敎會)’로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용어는 일정 부분 겹치기도 한다.

가톨릭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구교이며, 프로테스탄트는 1517년 마틴 루터 이후로 성립된 신교이다. 이때 신교의 의미를 좀 더 확장하기 위해 ‘개신교(改新敎)’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16세기 루터, 칼뱅 등의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를 모두 일컬어 개신교라 한다.

현재 개신교는 가톨릭과 정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3대 교파이다. ‘프로테스트(pro-test)’ 즉 ‘항의’라는 말의 유래는 1529년 2월 21일에 열린 독일 슈파이어 국회에서 루터계 제후(諸侯)와 도시들이 황제 카를 5세 등 로마 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한 데서 유래한다.

개신교는 독일에서 일으킨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발발하였으며, 1526년 이후 독일의 여러 지방으로 확산된다. 1930년, 독일 루터 교회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이 작성된 이후, 유럽 북쪽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영향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어 북구는 개신교, 그 중에서도 루터파 교회가 많다.

종교개혁은 스위스와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 슈트라스부르(크)에서는 부처, 제네바에서는 칼뱅 등이 주로 상공업자와 손잡고 개혁에 앞장섰다. 이런 과정 속에서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칼 녹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개혁 과정에서 교회에 대한 방화 및 살인이 횡행했었다. 종교개혁은 말처럼 단순한 개혁 ‘운동’이 아니라 실제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전쟁으로 말미암아 유럽을 전체적으로 지배하던 가톨릭의 위세는 분산되기 시작했다.

1648년 독일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각 분파가 형성되었고, 스위스계의 프로테스탄트를 개혁교회(改革敎會) 또는 장로교회(長老敎會)라고 부른다. 이 개혁교회는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이후 선교사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영국의 종교개혁은 매우 정치적인 이유로 현재의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성립시켰다. 이는 신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헨리 8세의 이혼을 로마 교황청에서 교리를 들어 인정하지 않자 그는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는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아 청교도 여러 파로 나뉘어 각각 장로파(長老派), 회중파(會衆派), 침례파, 퀘이커파, 메노나이트파 등 여러 교회로 성장하였다.

18세기에는 영국 성공회로부터 갈라져 나온 감리교회가 엄격한 규율과 형식을 강조했고, 영국 북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파가 주종을 이루었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 제파에서 나온 교회와 감리교회를 주종으로 하는 대표적인 개신교 국가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자유교회’이지만 유럽의 본래 모습은 상당히 ‘국가교회’에 가까웠다. 영국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독일의 루터회 등이 그러했다. 이들 국가교회가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모두 자유교회화 하는데, 우리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철저히 자유교회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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