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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와 천주교

1779년(정조 3) 권철신은 금사면(金沙面) 하품리(下品里)의 주어사(走魚寺)에서 정약용(丁若鏞) 등과 강학회(講學會)라는 모임을 갖는다. 이후 장소를 근처의 광주시 퇴촌면(退村面) 우산리(牛山里) 천진암(天眞庵)으로 옮기는데, 이때 참석한 사람이 권철신과 정약용을 비롯하여, 한국천주교의 성조(聖祖)인 이벽(李蘗 : 1754~1785), 형제였던 권일신(權日身), 정약전(丁若銓), 그리고 이승훈이었다.

주어사는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취급되는 천진암과 앵자봉(鶯子峯)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초장기의 모임 장소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권철신이 주어사에서 공부를 하였고, 이때 정약용을 만나 결사(結社)를 조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강학회에서 이벽은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를, 정약종은 ‘십계명가(十誡命歌)’를 지었으며, ‘삼종기도(三鐘祈禱)’ 대신 주자(朱子)의 ‘해서는 안 될 네 가지(四勿箴)’ 같은 것을 경문(經文)으로 삼아 외우기도 하였다.

이 강학회는 기본적으로는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때 이벽은 종교적인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강학회를 학문에서 종교로 이끌어나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주어사와 천진암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발원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임에 의해, 서학(西學)은 천주학(天主學)으로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천진암에는 이벽, 권철신·일신 형제, 이승훈, 정약종의 묘소가 이장되어 있으며, 대규모의 성역사업이 100년을 계획으로 진척되고 있다.

앵자봉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실촌면과 여주시 금사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가 667m에 이른다. 남한강이 여주에서 양평을 끼고 양수리로 나가는 길목에 솟아 있는데,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로,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양자산이, 서쪽으로는 무갑산과 관산이, 북쪽으로는 천진암이 내려다보인다. 특히, 신유박해와 병인양요 때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산으로, 한국 최초의 가톨릭 성지이다. 앵자봉 일원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역순례 장소로 지정되어 있다.

부엉골 또는 범골은 강천면 부평1리에 있으며, 한국 천주교회의 사적지이다. 이곳은 본래 1860년대 형성된 ‘부엉골’ 교우촌인데, 박해 초기부터 신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와 형성되었다. 부엉이와 범만 산다는 부엉골이 가톨릭의 ‘부흥’을 위한 부흥골로 기록되기도 하지만 관계자는 부엉골 또는 범골이라 밝히고 있다. 1882년(고종 19)에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가 공소를 설치했으며, 예수성심신학교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로베르 신부는 그 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Blanc, 白圭三) 주교의 명에 따라 1885년(고종 22)에 신학교 교사(校舍)와 사제관 겸 성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두막 두 채를 이곳에 건립하였다. 이어 블랑 주교는 새로 입국한 마라발(Maraval, 徐若瑟) 신부를 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임명하였다.

부엉골은 그 터조차 잃어버렸다가 천주교 교회사연구소에 의해 2만평 가량의 유적지를 확보해두고 있으나 아직 순교자를 기념하는 성역화는 되고 있지 않다. 여주의 순교자는 11인에 달하며, 그 가운데에서 최창주(崔昌周, 마르첼리노, 1749~1801), 이중배(李中培, 마르티노, 1752~1801), 원경도(元景道, 요한, 1774~1801), 정순매(鄭順每, 바르바라, 1777~1801)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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