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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신륵사

□ 소재지 :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을 보면 “신륵사 재부북 속호벽사(神勒寺 在府北 俗號碧寺)”라 하여 일반 백성들에게는 벽사(碧寺)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에 세종대왕릉의 원찰로서 봉미산(鳳尾山)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렸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다시 신륵사로 불려 현재에 이르렀다.

신륵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마암(馬岩)과 용마(龍馬)의 설화가 있다. 마암 부근에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이름난 스님이 나서 그 용마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스님은 나옹선사(懶翁禪師) 또는 인당대사(印塘大師)로 전해진다. 이같이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비보사원(裨補寺院)으로서 이름 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유물이 신륵사의 상징으로서 보물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륵사 다층전탑이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말하는 것으로, 이 탑은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하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탑의 북쪽에 수리할 때 세웠던 비가 전하는데 그곳에서 “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崇情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이라는 연대가 확인되었다. 병오년은 1726년(영조 2)에 해당되는데 고려 전기에 세운 탑이 이때에 이르러 다시 수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한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상징물로 또한 영릉의 원찰이었던 보은사를 알리는 좌표로서의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신륵사의 발전은 고려시대 이루어졌다. 곧 양주 회암사(檜岩寺)에 있던 나옹혜근(懶翁慧勤) 스님이 밀양 영원사(塋原寺)로 옮기던 중 입적하게 되면서 스님의 부도를 조성함과 동시에 많은 건물이 신축 또는 중수되었다. 현재 신륵사에는 나옹스님과 직접 관련된 유물이 3점이 있다. 보물 제228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229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보물 제231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이 그것이다. 석종은 1379년(고려 우왕 5)에 세운 것으로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갖고 있다. 석종비는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글씨를 쓴 것으로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석등은 전형적인 8각형 석등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변형을 모색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 고려말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이 나옹스님의 부도와 부도비 그리고 석등이 조성되면서 신륵사에 많은 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지은 건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고려시대의 삼은(三隱) 가운데 하나였던 목은 이색이 부친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서원하였던 대장경의 인출을 위하여 지은 대장각(大藏閣)이다. 보물 제230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숭인(李崇仁)이 지은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에 의하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대장각은 본래 신륵사 극락보전의 서쪽, 곧 지금의 명부전 근처에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다만 다층전탑 위쪽으로 대장각기비만이 남아 있다. 또 하나 신륵사에서 상징적인 건물은 보물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는 조사당(祖師堂)이다. 물론 현재 있는 건물은 조선 초기의 건물로 평가하나, 목은 이색이 지은 「보제존자진당시병서(普濟尊者進唐詩幷書)」에 의하면 1397년(고려 우왕 5)에 진영당(眞影堂)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조사당이 신륵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륵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중창되었다. 1440년(세종 22) 태종의 장인이었던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의 진영(眞影)을 모시면서 중수되었고, 1469년(예종 원년)에 태종의 헌릉 곁에 있던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옮기면서 옛 건물을 중수하고 새 건물을 건축하면서 대가람이 되었다. 당시의 건물로서 중심적인 것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보전(極樂寶殿)이다. 이 건물은 경내 중심에 위치하고 정남향을 하고 있어 현재 신륵사의 중심 건물로 기능하고 있다. 본래는 세종대에 지어졌으나, 현존하는 건물은 정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이다.

이후 신륵사는 숙종, 영조, 정조대는 물론 철종대에 이르기까지도 중수를 계속하면서 사세를 유지하였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는 1920년대에 열반당(涅槃堂)이 새롭게 조성되는 것을 계기로 명부전(冥府殿)의 중건이 이루어졌고, 1970~1980년대에는 종각의 신축과 극락보전, 구룡루, 조사당 등의 전각이 새롭게 중수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을 건립하면서, 중·고등학교 학생법회를 신설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지역 포교 활동에 힘을 쏟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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