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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와 여주

여주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불교 유적으로 확인된 것은 원향사(元香寺)이다. 현재 점동면 원부리에 그 유적이 남아 있다. 예전까지 원부리사지로만 불린 원향사지는 1992년 중부내륙 고속도로의 건설로 인한 지표조사 이후 1999년~2001년까지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그 성격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 결과 원향사명(元香寺銘) 기와를 통하여 사찰 이름을 분명히 알 수 있었고, 확인된 건물지만 모두 18동에 이르는 대규모의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사지(寺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원향사는 통일신라기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원향사의 성격은 944년(고려 혜종 1)에 건립된 영월(寧越) 흥령사(興寧寺) 징효대사보인탑비(澄曉大師寶印塔碑)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비문에는 원향사가 888년(신라 진성여왕 2)에 흥령사의 선나별관(禪那別館)으로서 기능하고 있었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흥령사는 사자산문(獅子山門)의 기초를 마련한 도윤(道允)의 제자 절중(折中)이 실제로 산문을 개설하였던 곳이다. 따라서 여주지역은 선종,1) 특히 사자산문의 사상적 영향 속에서 불교문화가 전개되었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원향사가 위치하였던 음죽현(陰竹縣)은 본래 고구려의 노음죽현(奴音竹縣)으로 개차산군(介次山郡)의 영현(領縣)이었다. 이 지역은 경덕왕대에 이르러 개차산군은 개산군(介山郡)으로, 노음죽현은 음죽(陰竹)으로 개명되었다.2) 이곳은 죽산(竹山)과 충주(忠州) 방면에서 이천(利川)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합류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추풍령과 계립령을 통하여 남천정(南川停)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음죽에서 합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설성산성(雪城山城)에서 이 두 교통로가 합류하였던 것으로 추정3)된다. 설성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善邑里) 설성산(雪城山)에 있는 석축으로 축조된 성으로, 그 동남쪽 선읍리에 음죽현의 치소(治所)가 있었다. 삼년산성으로부터 남천정에 이르는 교통로는 6~7세기 신라의 중요한 군사작전로로 이용되었는데, 이것은 신라가 서쪽 국경지대를 향한 신속한 병력 배치와 보급로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통로는 백제도 중요하게 여겼다. 한강 유역을 탈환하기 위한 진천-청주-보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원향사지가 위치하였던 여주 원부리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약 4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근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고대사회에서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했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죽·장호원·이천·여주 등 주변지역의 문화적 중심지로서 기능하였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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