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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불교와 여주

삼국시대의 여주지역은 여주시 매룡리고분군에서 발견된 고배, 도자(刀子), 석침(石枕) 등 7세기경의 토기류를 통하여 이미 큰 세력이 존재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략적 요충지였던 여주지역은 삼국이 각각 그 주도권을 장악하였던 때가 있었다. 온조왕대에는 금사면 이포리에 있는 술천성(述川城-외평리 성지)에 말갈병의 침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백제의 요충지였으며,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한강유역을 점령할 때인 475년(장수왕 63)에는 고구려의 영토에 속하여 골내근현(骨乃斤縣)이 되기도 하였다. 그후 신라의 한강유역 점령으로 통일의 기반을 구축할 때인 550년(진흥왕 11)부터는 신라의 영토에 속하여 660년(무열왕 7)에는 천령군(川寧郡)에 속하였고, 경덕왕 때에는 황효(黃驍)라 고치고 기천(沂川)의 영현이 되었다.

따라서 여주지역의 불교문화는 적어도 삼국시대 동안에는 특정 국가의 영향력보다는 삼국의 특징적인 불교문화1)들이 고르게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정은 현존 여주지역에서 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사찰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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