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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여주지역의 교육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게 되자 정부는 국가안보와 사회안정을 통한 국가발전을 위하여 국민총화체제를 강조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일환으로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선포를 기해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1970년대의 국정운영은 유신을 위한 행정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런 정황하에, 교육도 유신사업수행을 위한 국가의 요구에 따라 유신교육을 위한 교육체제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때부터 중앙집권적인 획일적인 통제하에 들어갔으며, 정권유지를 위해 이용되기도 하였다.1)

1970년대는 계속되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운동의 전개로 잘 사는 농촌 건설이 국가적 과제였으며,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1968년 12월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바탕으로 국민의 주체성 함양과 국민정신교육을 강조하면서 이를 계기로 안보교육강화, 과학기술과 보건체육의 진흥, 새마을 교육을 추진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산업계가 노동력을 대량으로 요구하게 됨에 따라 이농현상(離農現像)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농촌지역의 인구가 감소하고 당시 정부에서 강력히 실시한 가족계획의 일환으로 산아제한을 하여 여주지역도 다른 농촌지역과 같이 인구가 급감함으로써 초등학교의 학생수는 1970년까지는 계속 증가하다가 1970년을 고비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초등학교 학생수의 격감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진전에 따라 고급의 노동력과 인력을 필요로 하고 또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효과로 교육비 부담 능력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학벌중시 경향이 두드러져 중등교육기관은 학교, 교원, 학생 모든 면에서 확대 일로를 걸어왔다.

먼저 초·중등학교의 수는 198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수가 4개교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학생 수는 1960년대에 비하여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중학교의 경우에는 학교수가 4개 증가하고 학생수는 2배로 증가하였으며,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학교수는 5개교 증가하고 9배 이상으로 학생수가 늘어났다. 학급수에 있어서도 초등학교가 32학급 감소한 데 비하여 중학교는 54학급에서 112학급으로 증가하고 고등학교는 15학급에서 68학급으로 급성장하였다.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의 각급 학교의 학교수 및 학생수의 변동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1970년대 이후 중등교육기관은 1971년에 흥천중학교, 상품중학교, 여강중학교, 1978년에 강천중학교가 개교하고, 1971년 여강고등학교, 1974년 여주고등학교와 이포고등학교, 1975년 점동고등학교와 창명여자고등학교가 개교하여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개교함으로써 여주지역에는 중학교가 12개교, 고등학교 9개교로 증가하고 이에 따라 학생수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1970년대 이후 1980년대 이르는 기간에 개교한 중등학교의 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1982년 12월 정부가 평생교육을 위한 법적 조치로써 사회교육법과 유아교육진흥법을 제정 공포함에 따라 이를 계기로 유치원 취학률이 전국적으로 크게 향상되었으며, 여주에도 1980년 2개의 유치원에 134명이 재적하였으나 이 시기에 급격히 30개 유치원이 개설되어 1990년에는 32개 유치원에 983명으로 원아가 증가하였다.

한편, 이 시기는 정부에서 산업체 공장의 지방이전 정책에 수반하여 많은 기업체를 유치함으로써 여주에도 많은 기업체가 이전 또는 신설되었으며, 그 기업체 내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재직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1976년 교육법을 개정하여 산업체부설 중·고등학교와 야간제 특별학급을 설치 운영할 수 있게 하고, 1977년 야간특별학급 및 산업체부설 학교시설기준령을 제정·공포2)함에 따라 학교법인 수산학원 이사회가 1986년 2월 산업체특별학급 2학급을 문교부로부터 인가받아 여주제일고등학교에 개설하여 2000년에 이르기까지 여주 및 이천지역의 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청소년들에게 일반고등학교 야간부와 동일한 학력과 자격을 인정하는 고등학교 전과정을 이수하여 졸업시켰다.

1986년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여주제일고등학교 산업체특별학급에서 졸업한 학생수는 895명이다. 이는 여주지역의 중등교육기관이 이 지역 학생뿐 아니라 가정환경 등의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잃고 이 지역 산업체에 종사하던 근로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여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일이다.

한편 1980년대 말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격동의 연속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88올림픽 개최국으로서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던 시기였으나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권익과 복수노조 허용 문제를 놓고 연일 노사분규가 발생하는 극도의 혼란이 증폭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교육현장에도 민주화 기류에 편승하여 참교육을 표방하면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설치 인정과 법적 허용을 요구하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이 같은 분위기는 여주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정부는 기본적으로 현행법상 교원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으므로 노동조합결성 자체가 위법이므로 전교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였으며, 이 단체가 의도하는 교육의 방향이 민중교육이론에 근거한 좌경의식화라고 판단하고 징계하도록 조치하였으며, 이에 따라 1989년 말까지 전교조사태로 징계받은 교사는 전국적으로 1,519명(파면 170, 해임 949, 면직 393, 정직 7)에 이르렀다.3) 이 시기에 여주지역의 교원 중 전교조사태로 징계처분을 받고 해직된 교원은 30명에 달했다.

전교조사태로 많은 교원들이 교단을 떠나게 되자 그들의 복직을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많은 학교들이 수난을 겪어야 했으며, 여주에서도 징계에 의하여 퇴출된 교원과 학생들의 소요로 수업이 중단되고 교육행정이 일시 마비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해직된 교사들은 1994년 3월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대부분 복직되어 교단에 복귀되었지만, 1980년대 말은 산업현장과 함께 교육현장도 수난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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