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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전근대 교육기관

여주에 최초로 생긴 교육기관은 고려말 1391년(공양왕 3)에 유교 진흥정책으로 여주 마암(馬巖) 기슭에 세운 문묘와 명륜당이다.1) 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관리적 측면에서 본다면 공립에 속한다. 향교는 고려가 송나라에서 도입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배양하고 유학이념에 입각하여 그들을 제사하고 교생들을 교육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지방교육기관으로서 조선 중엽 이후에는 국난과 병란에 혼탁하여진 사회를 교화하고 회복하는 데 이용되던 문화의 중심기관이었다.

향교는 1894년 갑오개혁까지 조선 최고 교육기관으로 유지되어오다가 고종 31년 말에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교육적 기능은 없어졌다.

여주지역에는 여주향교(驪州鄕校) 한 곳이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교관 1명이 30명의 유생을 교육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교육상황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여주에 체계적인 교육이 시작된 것은 고려시대 향교(鄕校)로 시작하여 조선시대 서원(書院)과 서당(書堂)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근대 시기의 교육상황은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이었던 성리학이 일반 농민에 이르기까지 확산되어 농민을 교화하고 일상생활을 규제하기에 이르러서야 교육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향교와 함께 조선시대 민간 사학교육기관으로는 서원과 서당을 들 수 있다. 여주지역의 대표적 서원은 기천서원(沂川書院), 고산서원(孤山書院), 대로사(大老祠), 매산서원(梅山書院) 등 4곳이 있으나 당시 교육의 내용에 대하여는 달리 전해지는 것이 없다.

서원은 조선시대 중추적 교육기관으로서 교육을 진흥시켰으나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이 섭정(攝政)하게 되자 1871년(고종 8) 서원에 대한 철폐령(撤廢令)으로 폐쇄되거나 정비되어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인재를 기르는 교육의 기능은 없어졌다. 여주지역의 서원 중 철폐령에서 제외된 곳은 대로사(일명 강한사) 한 곳으로 이는 전국 650개의 서원 중 철폐령에서 제외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2)

서당이 여주지역에 언제부터 유래되었는지는 정확치 않으나 사설교육기관으로 2개 리에 하나씩 있었는데 옛날 선비들은 서당에서 수학 후 향교 또는 서울의 중앙 및 동·서·남의 네 곳에 세운 사학(四學)을 거쳐 성균관으로 진학하기도 하였으며, 주로 유교의 경전과 한문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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