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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신문의 태동과 성장

우리나라에서는 근대적 신문이 발행되기 이전인 조선조 전기 또는 15세기 무렵부터 조보(朝報) 또는 기별(奇別)이라 불리는 관보 성격의 필사 신문이 있었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발표하는 자료들을 각 관청의 기별서리(奇別書吏)들이 손으로 베껴서 서울과 지방의 각 관청과 양반 등에게 보내는 관보적 성격의 문서였는데, 국왕의 동정과 관리의 임면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일반 사회기사의 성격을 띤 것도 있었다. 조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가 발행되기 전까지 존재하다가, 1894년 정부가 정식으로 인쇄된 『관보』를 창간하고 이듬해 승정원의 공사청을 폐지하면서 없어졌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에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정부기구인 박문국(博文局)에서 발간하였으나 당시 개혁파들이 국민에게 외국의 사정을 널리 알려 개화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데 큰 목적을 두었다. 『한성순보』는 창간 이듬해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폐간되었으나, 1886년 1월 25일 다시 『한성주보』를 창간하여 1888년까지 발행하였다. 한편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은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이다. 이 신문은 한글전용과 띄어쓰기를 단행하여 그 후의 민간 신문 제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뒤이어 1898년에는 『뎨국신문』, 『황성신문』 등의 일간지들이 창간되었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인이 발행하는 일본어 신문이 늘어났고, 한국인이 발행하는 친일 신문도 생겨났다.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으로는 1881년 부산에서 창간된 『조선신보』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895년에 창간된 『한성신보』와 1904년 3월 10일 창간된 『대한신보』, 1904년 4월 18일 창간된 『대동신보』가 대표적이다. 한국인 발행 친일지로는 1906년 1월 6일 창간된 『국민신보』, 1907년 7월 18일 창간된 『대한신문』 등이 있었다. 그러나 1904년 영국인 베델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서 민족진영을 대변하는 논조를 폈다. 이 신문은 국한문판, 한글판 및 영문판을 동시에 발간하는 한말 최대의 민족지였으나, 1910년 국권 피탈 후 일제에 의해 폐간되었다. 3·1운동 후 1920년부터 일제는 소위 문화정치를 표방하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등 3개의 민간지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간지는 일제의 철저한 탄압으로 수많은 압수와 정간처분을 당했음은 물론 필화(筆禍)로 많은 언론인들이 고통을 겪었다.

1920년 창간된 『시사신문』은 이듬해 봄에 폐간되었고, 1924년 3월 창간한 『시대일보』는 『중외일보』(1926. 11. 15), 『중앙일보』(1933. 11. 27), 『조선중앙일보』(1933. 11. 15)로 몇 차례 제호를 바꾸면서 발행되다가, 1936년 9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정간되어 끝내 복간되지 못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1940년 8월 일제의 강제 폐간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일제는 한국인에게 신문발행의 허가를 극도로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허가해준 신문에 대해서도 행정처분으로 사전·사후 탄압을 자행하였고, 사법처분으로 언론인 구속 등이 빈번하였다. 행정처분에 의한 사전처분은 ①간담(墾談), ②주의(注意), ③경고(警告), ④금지(禁止)의 순으로 제도화되어 있었고, 제작된 신문에 대한 사후 탄압으로는 ①삭제(削除), ②발매금지 및 압수, ③발행정지(정간), ④발행금지(폐간)의 4단계가 있었다.

삭제처분은 문제된 기사를 삭제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가장 빈번하게 자행된 탄압 방법이었다. 발행금지 및 압수는 인쇄가 끝난 신문을 발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써 심한 때에는 1년 평균 매주 한 번씩 인쇄된 신문이 압수되어 민족지는 경영상으로도 많은 타격을 입었다. 발행정지는 정간으로서 일제강점기 동안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신보』가 각각 1회의 발행정지를 당했다. 발행금지는 폐간으로서 신문지법에 의해 허가되었던 잡지 『신생활』이 1923년에, 『개벽』이 1926년에 각각 폐간되었고, 1940년 8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자진폐간의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로 강압에 의한 강제폐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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