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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운송업

조선시대 여객운송 방식은 크게 관물 운송을 위한 공공운송과 개인운송으로 나뉘어 진다. 당시 여주에 적을 두었던 공공 교통수단의 흔적은 고려시대 때 설치된 신진역(여주읍 신진리)과 안평역(점동면 청안리) 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역은 원칙적으로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었고, 관물을 수송하는 소규모 물류단지 역할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주관내 설치되었던 역들은 대부분 19세기말을 전후하여 모두 폐쇄되었다. 조선시대 일반 서민들은 주로 걸어서 먼 거리를 왕래했고 이따금 수로를 이용하기도 했으며 극소수 지배계층만이 말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같은 현실은 일제강점기 때 침략국의 필요에 따라 도로 확장과 개설과정을 거쳐 해방과 함께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운행되면서 전면적인 변화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러나 당시 여주에서 출발했거나 여주를 경유하는 버스는 서울 등 원거리 지역의 경우 기껏해야 하루 1회 또는 몇 차례 왕복이 고작이었으며, 여주-서울간 소요시간도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4시간 이상 소요되는 등 원시적 상황을 면치 못했다.

열악하기 짝이 없었던 도로사정은 5·16 군사정변 이후 국도와 산업도로, 고속도로가 새롭게 건설되고 시군 단위 지방도로가 대폭 정비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가운데 산업발전의 영향으로 신형 고성능 버스가 각 노선에 투입, 육상교통 여객운송 방식이 현대화 체계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여주에 승용차가 처음 공식 등록된 것은 지난 1957년이다. 당시 일반인 소유 승용차는 전무했으며 관용 승용차만 3대 운행되었다. 기록상 차종은 확인할 수 없으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승용차로 불렸던 차량은 모두 지프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1957년 3대에 불과했던 승용차는 1975년 44대로 늘어났고, 2004년 6월 현재 여주 차량 보유 대수는 23,364대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화물차 역시 1957년엔 44대에 불과했으나 같은 시점 기준으로 16,564대로 증가하였고, 승합차는 199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여 현재 3,541대가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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