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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역사와 여주양잠

우리나라는 단군조선 때(4300년 전)부터 누에치기를 장려하였으며 삼한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양잠을 장려한 기록들이 많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종상지법의 제정으로 뽕나무 심기를 장려하였으며, 왕비친잠예법을 제정하여 왕비로 하여금 선잠예와 뽕따기, 누에치기를 손수 보이는 친잠예를 행하여 양잠을 적극 장려하였으며, 각 도에는 잠실도회를 설치하는 등 역대 왕이 양잠을 적극 장려하였다. 그후 일제식민지의 수탈농업통치를 거쳐 광복 후의 혼란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쇠퇴하여오다가 1960년대 들어서부터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잠업증산 5개년 계획을 수림, 수출전략산업으로 적극 육성하여 외화획득 증대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로 인해 누에치기가 농촌에서는 소득 작목으로 큰 인기를 얻어 1976년에는 사상 최고기록인 42,000톤의 누에고치를 생산하였으며 생산수출액도 매년 증가하여 1980년대에는 연간 5~6억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여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부터 국제경기의 침체와 우리나라 농촌여건의 변화로 누에고치 생산은 매년 감산되어 최근에는 전량수입에 의존 가공수출하고 있다. 한편, 양잠농가에서는 누에고치로 소득을 올릴 수 없어 누에고치 생산을 중단, 건강식품으로 누에가루와 누에동충하초 등을 생산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양잠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국적인 양잠 침체에 따라 여주잠업도 1960년대 142톤여의 누에고치 생산에서 1976년에 492톤까지 생산, 경기도(2,525톤)에서 제일 많이 생산하는 잠업군으로 성장하였으나 그 후 전국적인 현상에 따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1993년 누에고치 1.5톤 생산으로 여주의 양잠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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