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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경찰서의 발족 및 연혁

1910년 8월 29일 여주군 주내면(현 여주시 창동)에 여주분귀소가 설치되어 일인 헌병 2명과 한인 헌병보조원 2명 등 총 4명이 치안을 담당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생하자 동년 8월에 헌병제도를 폐지하고 문화정치라는 미명하에 여주면 홍문리 15번지에 여주경찰서를 설치하고 관내 점동, 가남, 이포, 개군, 북내, 강천, 대신 등 7개면에 주재소를 설립하였다. 1943년 6월 20일에는 능서, 흥천면에 주재소가 설치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민심 수습과 관내 치안을 위하여 초대 민선 서장으로 석광태 씨가 임명되어 지도하는 군 자위대가 발족하여 여주군내 치안을 담당하였다. 동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에 군 자위대로부터 경찰서를 인수하여 정식으로 여주경찰서를 개설하게 된다. 이때 여주경찰서 정원은 35명이었으며 여주읍 및 7개 면에 걸쳐 1개 주재소와 7개 지서(支署)를 관할하였고 1947년 3월에는 이포지서 관할구역인 개군면 소재지에 개군지서를 설치하여 치안을 담당하였다(1개 주재소/ 8개 지서). 1948년 2월 10일 금사면 상품리 산북출장소를 설치(7개리 관할)하였으며, 1949년 6월 10일 능서면 매향리에 매향출장소를 설치 6개리를 관할하였다.

1950년 6·25전쟁을 거치면서 경찰서 및 능서, 강천 등 지서가 소실 및 전소되어 여주초등학교 강당을 임시 사용하였다. 1956년 9월 15일 신청사를 준공하였으나 동년 11월 19일 전기누전으로 인해 청사 본관이 전소되어 부속건물에서 업무를 보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1957년 11월 30일 현재의 청사 위치인 여주읍 창리 162번지로 이전하였으며, 이후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여주군 개군면이 양평군으로 이속되어 1개 주재소와 8개 지서를 관할하게 된다.

1988년 8월 31일 신청사를 준공하였으며, 1989년 12월 15일 산북출장소가 파출소로 승격되어 관내 10개 파출소를 관할하게 되었다. 2003년 현재 여주경찰서는 1개실(청문감사관실) 5개과(경무·생활안전·수사·경비교통·정보보안) 16계의 편제를 갖추고 있다. 파출소는 2003년 7월 1일부터 기존의 10개 파출소를 3개 지구대(홍문·가남·금사) 및 산북파출소로 변경하였다. 여주경찰서 총인원은 경찰 183명(2003년 10월 30일 현재), 전·의경 26명으로 총 209명이 여주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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