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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읍의 역사·인문적 배경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대동강 언저리의 평양, 소양강 언저리의 춘천과 함께 여주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꼽고 있으며, “여주에는 사대부들이 많아서 대를 이어서 산다.”고 하며 여주에는 일찍부터 벼슬길을 기다리는 양반들과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사대부들이 많이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안동 김씨, 여흥 민씨, 원주 원씨, 남양 홍씨, 여주 윤씨와 같은 세도가들이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현재의 여주읍 시가지는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세종대왕릉(영릉) 성역화 사업과 더불어 시가지 정비 사업을 실시하여 많이 변했으며, 1987년도에는 시가지가 비교적 잘 다듬어져 경기도 색채환경시범도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여주읍에는 대로사(강한사), 명성황후생가 등 문화재가 많아 문화관광 도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명성황후생가는 199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02년까지 많은 예산을 투자해 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또 명성황후가 생가를 떠나 왕비로 간택(1866년)되기 전까지 거처하였던 감고당(感古堂)이 쌍문중고등학교 신축계획에 따라 멸실 위기에 처해져 감고당을 명성황후생가 내로 이전 복원 할 계획으로 공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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