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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시기의 정당과 정치조직

자유당이 획책한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4·19 민주혁명은 끝내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을 붕괴시켰다. 정치적 자유가 분출되는 가운데, 민주당 중심의 보수세력에 맞서 혁신세력이 새로이 부상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총선에서 전체 당선자의 3분의 2를 훨씬 넘는 175명을 당선시켰으나, 국무총리 임명을 둘러싸고 신·구파간의 갈등이 노골화된다. 신파의 장면이 국무총리에 임명되고 내각이 신파 중심으로 구성되자, 구파는 신파와 결별하고 마침내 신민당을 창당(1961. 2. 26)했다.

제2공화국 시기에 자유로운 정치공간을 이용, 다양한 혁신세력이 부상하였으나, 서상일(대표 최고위원), 윤길중(간사장), 박기출, 이동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대중당이 가장 뚜렷한 존재였다. 사회대중당은 한국정당사상 처음으로 민족적 주체성에 입각한 민주사회주의의 실현을 공식적으로 표방한다. 그러나 7·29 총선에서 혁신세력은 민의원에 5석, 참의원에 2석만을 획득함으로써 결정적인 패배를 맛본 이후 사회대중당은 와해되었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1960년 4·19 민주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붕괴되었다. 같은 해 6월에는 내각책임제개헌이 있었고, 동시에 국회가 해산되고 7월에 제5대 국회의원(민의원과 참의원)선거가 있었는데, 이 선거에서 자유당은 크게 패배했다. 여주에서는 전 자유당 소속의원인 김의준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투표일을 20여 일 앞두고 사퇴했다. 이 선거에서는 서울지방법원 여주지원 판사를 역임한 박주운이 민주당의 입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전국적으로 233명의 민의원 중 175명(75.1%)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민주당의 압승이라 할 수 있었다. 당선된 박주운은 민주당 중앙위원에서 여주의 민주당 조직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시적으로 여주지원에 근무하였을 뿐 여주에 뿌리를 둔 후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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