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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대통령의 간접 선출제도 도입에 따른 선거가 제4공화국에서 실시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제5공화국에서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이다. 이는 대통령 간선제에 명분을 쌓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서 대통령 선거 시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 유일한 기능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제도는 한 선거구에서 1명에서 5명 정도를 선출하는 제도로서 초대 대의원 선거는 1972년 12월 15일에 실시하였으며, 전국적으로 70.3%의 투표율에 1,630개 선거구에서 2,359명을 선출하였다. 2대 대의원 선거는 1978년 5월 18일에 실시하였다. 2대 선거는 전국적으로 89.5%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1,665개 선거구에서 2,538명의 대의원을 선출하였다.

이 의결기관은 제3공화국의 1972년 ‘10월 유신’의 산물이다. 1972년 11월에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확정되어 12월 27일 공포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선거는 1972년과 1978년에 걸쳐 2회 시행된 바 있다. 1972년 12월 15일 첫번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여주에서는 9명이 선출되었다. 여주에서 전체 19명이 입후보했는데 각 투표구(읍·면) 내에서의 경쟁률은 평균 2 대 1이었다. 임기는 1978년 6월 30일로 되어 있었다. 이들은 다른 대의원들과 더불어 대도시(서울·부산)와 도별로 모아 1972년 12월 23일 단일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을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데 참여했다. 유신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토론 없이 무기명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하고 있었다. 한편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재적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3명의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들을 일괄 투표로 선출했다. 이들 73명은 유정회(제1기)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이들은 1976년 제2기 유정회 의원(국회의원)의 선출(1976. 2. 16)에도 참여하였다.

1978년에 들어와 정계는 다시 활기를 띠었는데 이는 5월의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12월의 10대 국회의원 선거 때문이었다. 이 대의원 선거는 곳에 따라서는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하는 열띤 경합을 벌였는데 여주에서는 10명이 선출되었다. 제1대 선거(1972년)와 다른 점은 여주읍의 정수가 1명에서 2명으로 증가되었다는 사실과 4개 면에서 새로운 대의원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점동면에서는 신동민이 손종학으로 교체되고, 가남면에서는 김성진(고교 교사)이 신흥순(군 공무원)으로 교체되었다. 북내면에서는 김은순(면 농협조합장)이 이춘우(예비군 중대장)로, 그리고 강천면에서는 남충원(전 면 공무원)이 김종덕(단위조합장)으로 각각 교체되었다. 여주읍의 증설된 1명의 대의원으로는 손병호(부읍장)가 당선되었다. 제2대 대의원 선거에서는 군내에서 20명의 입후보자가 나와 각 투표구(읍·면) 내에서의 경쟁률은 제1대와 같이 2 대 1에 머물렀다. 그런데 능서, 금사 및 대신의 3개 면에서는 무투표로 초대 대의원이 당선되었다. 초대 대의원이 새로운 후보자와 경합을 벌인 곳은 흥천면으로 초대 대의원인 경광호(면장)가 3명의 새로운 후보자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강천면에서는 1석을 놓고 3명이 경합을 벌였다. 제2대 대의원들은 1978년 제3기 유정회 의원(국회의원) 선거(1978. 12. 21)에 참가하였다. 이 선거는 11개 시도별 지역합의를 통해서 행해졌다. 경기도의 경우 수원 시민회관에서 회의를 가졌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재적 319명(경기도) 전원이 참석, 무기명 비밀투표로 대통령이 추천한 77명의 유정회 의원과 8명의 예비후보를 선출했다. 이 투표에서 반대표나 무효표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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