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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제12대 대통령 선거

1972년 ‘10월 유신’과 이에 따른 정치적 변화는 대통령선거가 여주 주민에게 갖는 의의를 감소시켰는데, 이는 대통령 선거체로서 새로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생겨(1972. 12. 15 대의원 첫 선출) 일종의 간선제, 그것도 대의원 입후보자에게 정당인을 배제하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이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여주에서도 9명의 대의원이 선출되어 제8대 대통령 선거(1972. 12. 23)에 참여했다. 새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었고 박정희가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 유신체제의 제2기가 시작되었는데 1979년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에 선임됨에 따라 개헌논의가 격화되고, 이어 국회에서의 김영삼의 제명, 부산과 마산에서의 소요사태 발생, 계엄령 선포 등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 정국이 혼미에 빠져들던 중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1979. 10. 26)이 발생했다. 10·26 사태로 유신정권의 몰락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제4공화국에 이어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기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최규하 국무총리가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80년 5월 31일에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신설되고, 같은 해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제11대 대통령으로 전두환을 선출하였다.

제5공화국 헌법은 새로 집권한 신군부 세력의 단계적 집권구상에 따라 선포된 비상계엄 선포하의 정국에서 국회가 아닌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제정되어 1980년 10월 22일 시행된 다섯 번째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되었다.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해 처음으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은 1981년 2월 25일 전두환을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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