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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대통령 선거, 제4대 부통령 선거

제2대 대통령 선거(1952. 8. 5)와 제3대 국회의원 선거(1954. 5. 20)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승만과 자유당은 이승만의 3선을 위해 개헌을 시도하였다.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재선 이상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허용하고 국민투표제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은 1954년 11월 29일에 실시된 표결에서 재석 3분의 2를 넘는 정족수에서 한 표가 부족하여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사사오입(四捨五入)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적용하여 부결을 번복하여 통과시켰다.

초대 대통령의 3선 출마의 길을 마련한 개헌을 통해 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과 제4대 부통령 선거가 국민직선제로 실시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국민의 반발과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의 인기로 정권교체의 가능성도 있었으나, 유세 도중에 신익희 후보가 갑자기 서거함에 따라 이승만이 무난히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권 변화의 열망은 전국에서 94.4%, 여주에서 97.7%라는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이승만은 70%의 득표로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승만은 여주에서 전국적으로 획득한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86.4%의 득표를 얻었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30%를 획득한 조봉암 후보가 여주에서는 13.6%의 득표율에 그쳤다.

신익희의 사망으로 정권 교체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 반해 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 장면이 46.4%의 득표율로 44%를 얻은 자유당 후보 이기붕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반면 여주에서는 이기붕이 57.8%로 선두를 차지하였고, 장면은 32.2%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여주 주민은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를 적극 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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