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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

제4공화국 유신헌법과 마찬가지로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한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민주화 요구는 거세었다.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3개의 야당(신민당, 민한당, 국민당)의 득표율(58.1%)이 여당(민정당)의 득표율(35.6%)을 앞서고, 야당 신민당이 102석을 차지함으로써 148석의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을 저지하는 정책을 밀고 나가 1987년 6월항쟁이라는 민주적 항쟁에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의 6·29선언과 전두환 대통령의 7·1담화를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조치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8월 31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의한 개헌안 준비를 마치고, 10월 12일 국회에서 개헌안을 의결했다. 국회의 의결을 거친 개헌안은 헌법이 정하는 대로 10월 27일 국민투표에 부쳤다. 여섯 번째 국민투표는 전국의 투표율은 78.2%였으나 여주의 투표율은 이보다 높은 82.7%였다. 반면에 전국적으로 94.5%의 지지를 보였는데, 여주는 이보다 조금 낮은 93.9%의 찬성률로 이 헌법을 지지하였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972년 이래 3번의 국민투표(1972년, 1975년, 1980년)에서 여주는 친여적 투표 경향과 함께 보수적 측면을 강하게 보였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합의하여 만든 개헌안은 민주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여주에서는 이전의 국민투표성향과는 달리 전국이나 경기도 수준에 비해 미세한 차이이긴 하지만 낮은 찬성률을 보여 보수적 투표성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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