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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두레싸움의 연희장소 및 시기

여주지역의 두레싸움은 전기한 바와 같이 가남읍 화평리와 정단리, 승단리의 두레싸움이 제일 장관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여주군내에서는 농악이 제일 성했던 지역이며, 지금까지도 기예인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정단리는 일제의 유기그릇 공출 때도 쇠(징, 꽹과리)를 숨겨놓고 빼앗기지 않을 정도로 농악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었던 마을이고 보면 민속놀이의 연희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도 출중한 기예인이 생존해 외지로 청원되어 다닐 정도로 기능이 뛰어났으며 걸립이나 각종 민속놀이의 상쇠를 맞아 연희를 주도하고 있다.

이 두레싸움의 놀이장소는 능서에서 가남면 소재지인 태평리로 가다가 가남과 능서의 경계지역인 능서면 마래리를 지나서 고개 모퉁이를 돌면 비포장 도로를 가운데 끼고 우측은 정단리고 좌측은 화평리가 마주보고 마을 가운데는 논이 있어, 이 논에서 두레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두레싸움은 보통 정월달에 줄다리기를 끝내거나 장채놀이를 끝낸 다음에 연희가 벌어지곤 했으니, 모심기 때나 기타 다른 때에도 농기들이 마주쳐 기세배를 할 때 벌어지곤 하던 것이 중단되기 얼마 전부터 정월에 날짜를 잡아놓고 양 부락에서 풍물을 잡히고 응원단을 대동해 한바탕 큰 면회마당으로 발전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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