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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포 및 유래

두레싸움은 한때 기호지방의 전역에서 연희된 것으로 나타나며, 그중 여주·평택 등이 가장 볼 만한 장관을 이루었고, 전라북도 정읍·익산 등의 호남지역 전체와 영남지방 등 전국 일원에서 연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두레싸움의 유래는 모든 민속놀이의 유래가 그러하듯이,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구전되어 오는 유래의 내력은 약 300년 전 정읍에 사는 최씨 형제가 추수를 끝내고 노적가리를 쌓아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지신명과 조상에게 고사를 지내었고, 기쁜 마음으로 아우가 형에게 세배를 올린 데에서 기세배의 유래가 보인다. 이 유래에서 기의 서열을 정해 세배를 드리는 데서 발단이 되어 농기싸움이 일어났다고 하나 우리나라 세배의 풍습은 훨씬 이전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유래는 신빙성이 없다.

다만 기세배의 과정에서 발단이 되어 농기싸움이 시작됐다는 점은 기를 중히 여기는 것으로 보아서도 가능하며, 기를 위하지 않으면 동리의 모든 일이 되지 않고, 화가 미친다는 좌속적(坐俗的)인 사상이 이 농기싸움이 사생결단의 놀이로까지 변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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