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민속 의식주 및 생업민속 생업민속 농업 농기구 쟁기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쟁기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갈아엎어야만 한다. 흔히 봄에 하는 갈이를 ‘봄갈이’, 가을에 하는 것을 ‘가을갈이’라고 한다. 갈이는 땅 위에 있는 유기물을 땅 속으로 집어넣음으로써 작물의 좋은 거름이 되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대표적인 가는 연장으로 쟁기를 꼽을 수 있다.

“농기구 중에 으뜸은 쟁기”라고 말한다. 여주에서 쓴 쟁기는 극젱이, 조선쟁기, 왜(倭)쟁기(洋쟁기) 등 세 종류이다. 극젱이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이루어진 쟁기로써 콩밭이나 보리밭에 김을 맬 때 쓴다. 극젱이로 밭의 골을 타면 김도 매어지고 뿌리 쪽으로 흙을 붙여 바람이 불어도 작물이 넘어가지 않게 한다. 또한 골을 쪼개면 여름철 장마철에도 배수가 잘 된다. 극젱이로 김을 맨 후에는 호미를 가지고서 다시 김을 촘촘히 맨다. 극젱이는 소 한 마리로 끌며, 소가 없는 농가에서는 성에 끝에 줄을 달아 사람이 앞에서 끌기도 한다. 극젱이 보습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 큰 보습은 골을 내는 데, 작은 것은 북을 줄 때 사용했다.

조선쟁기는 왜쟁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논과 밭에서 쓰인 쟁기로서 왜쟁기보다 무겁고 둔한 편이며, 겨리로 쟁기를 끈다. 그리고 조선쟁기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전문적인 쟁기꾼을 불러다가 갈이를 한다. 그를 ‘진일꾼’이라고 부른다.

왜쟁기는 일제시대 때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여주 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였고, 농가마다 한 틀씩은 가지고 있었다. 왜쟁기는 조선쟁기와 마찬가지로 볏이 부착되어 있으나 볏을 좌우로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왜쟁기는 소 한 마리로 끈다.

쟁기가 널리 보급되었음에도 밭에서 극젱이를 쓴 이유는 밭에 돌이 있는 경우 바닥이 있는 쟁기는 돌 뿌리에 걸려 제대로 갈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젱이를 사용할 때는 쟁기 손잡이를 위로 들어가면서 갈이를 한다. 극젱이는 손재주를 가지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나, 쟁기는 구조가 복잡하여 아무나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쟁기는 마을의 목공이나 시장에서 구입했다. 주인은 보습과 볏만 교체할 뿐이다.

쟁기질을 할 줄 아느냐에 따라 머슴의 대접이 달라진다. 어린 머슴이 쟁기를 부릴 줄 알음으로써 쇠경을 받게 되고 장가 갈 능력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머슴에는 하머슴(어린 머슴), 중머슴, 상머슴으로 나누어지는데, 상머슴은 집안의 농사일을 모두 관장하는 사람으로서, “상머슴 잘 두면 그 집안 농사 잘된다.”는 말도 있다. 40년 전에 상머슴은 1년에 5~7가마의 쇠경을 받았고, 백중날에도 ‘머슴생일’이라고 하여 주인집에서는 옷과 막걸리 값을 챙겨주었다.

논갈이하는 방법으로는 처음 논둑에 쟁기를 대고 왔다갔다하며 가는 방법과 삭갈이라고 하여 논을 3등분하여 한 방향으로만 가는 방법이 있다. 삭갈이는 깊은 방죽논을 갈 때 이용하는 방법이고 봄갈이에 주로 쓴다. 여주에서 많이 하는 갈이방법은 ‘되량갈이’로서, 지난해 종자를 심은 이랑을 먼저 가르는 것을 ‘되량 쌓는다’고 하며, 돌아오면서 다시 이랑을 가르는 것을 ‘이듬갈이’, 갈리지 않은 땅을 2번 반 갈아업는 것을 ‘골 지른다’고 한다. 되량갈이 시 기를 놓치면 엎어진 흙을 다시 가른다. 이것을 ‘타리’라고 하며, 모두 갈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든다.

쟁기가 있어도 훈련된 소가 없으면 갈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소와 사람은 1 대 1 품앗이가 이루어졌다. 송아지가 10개월이 되면 쟁기 끄는 방법을 송아지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송아지에 멍에를 메고 돌이나 어린아이를 끙게에 앉히고 끌게 하였다. 겨울철에는 보리밭을 다녀 보리밭에 습기를 보호하는 일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송아지로 하여금 멍에에 익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위 과정이 끝나면 실제로 쟁기를 걸고 앞에서 사람이 송아지를 이끌고 몇 번 갈이를 한다. 그러면 사람이 앞에서 이끌지 않아도 쟁기를 끌 수 있다. 쟁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코뚜레를 건다. 코뚜레는 잘 휘어지는 물푸레나무로 만들며 불에 구워 휘어지게 만든다. 코를 뚫은 소의 코에는 간장을 발라 덧나지 않도록 한다. 코뚜레는 귀신을 막는다고 하여 이사를 간 집 방문에 걸어둔다. 딸이 시집을 갈 때도 가져간다. 코뚜레는 송아지가 큰 소가 되면서 바꾼 헌 코뚜레로서 황소에게 건 코뚜레만을 쓴다. 이러한 풍습은 지금도 남아 있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