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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삼형제 이야기

옛날 여주 땅에 허(許)씨 성을 가진 어떤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집이 너무도 가난하였지만 성품은 몹시 어질고 착하였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글공부를 시키고 친지들에게 구걸하여 서량(書糧)을 떨어지지 않게 대주고 있었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허씨 내외가 모두 죽자 세 아들은 밤낮으로 울부짖고 상장비용을 간신히 마련하여 겨우 초장(草葬 : 시체를 짚으로 싸서 가맹장함)을 하였다. 3년이 이미 지나자 집안 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었다.

허씨의 둘째아들인 홍(弘)이 그 형과 아우에게 말하였다.

“전에 우리 3형제가 굶어 죽는 것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께서 인심을 얻어 식량을 도움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3년이 벌써 지났으니 선친의 은택이 이미 고갈되어 호소할 곳이 없습니다. 이제 곤궁한 처지에 놓인 우리 형제는 제각기 살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오늘부터 각자 소질에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형과 아우가 말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종사해온 것이 글공부에 불과할 뿐이다. 그 밖의 농사짓고 장사하는 일 같은 것은 자본을 마련할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향방을 알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굶주림을 참고 공부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홍은 다시 말하였다.

“사람의 소견은 각각 같지 않으니, 각자 좋아하는 소질을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3형제가 모두 글공부만 한다면 천수를 다하기 전에 다 기한(飢寒)에 죽을 것입니다. 형님과 아우는 기질이 매우 약하니 다시 학업을 계속하십시오. 나는 10년을 기한으로 힘을 다하여 재산을 모아서 후일 우리 형제들이 생활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겠습니다. 오늘부터 파산(破産)하여 형수와 제수는 우선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고 형님과 아우는 책을 지고 절에 가서 중들의 밥을 얻어먹으며 공부를 하여 10년 후에 서로 만나기로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소위 세업(世業)이란 것은 단지 가대(家垈)와 보리밭 세 두락과 그리고 어린 계집종 한 명 뿐인데, 이것은 종가의 물건이나 일후에 의당 돌려드릴 것이니 제가 이 계집종을 빌려서 재산을 경영하는 인력으로 삼겠습니다.”

이날로 3형제는 눈물을 뿌리며 서로 이별하였다. 홍은 형수와 제수를 친정으로 보내고 형과 아우를 산사로 보내고 나서 아내가 신혼 때 꾸몄던 물건들을 팔아서 돈 7~8냥을 마련하였다.

때마침 면화가 풍년이어서 그 돈으로 몽땅 미역을 사서 등에 지고 그 선친이 평소에 왕래하며 양식을 구걸하던 친지의 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미역으로 면폐(面幣)를 삼아 면화를 구걸하였다. 모두들 그 뜻을 가엾게 여기고 넉넉히 주니 거둬들인 면화가 좋고 나쁜 것을 모두 합쳐 몇 백 근이 되었다.

아내로 하여금 밤낮으로 길쌈을 하게 하고 그는 나가서 내다 팔았다. 또 귀리 10여 석을 사서 매일 죽을 쑤어 아내와 자신은 한 사발을 반으로 나누어 먹고 계집종에게는 한 사발을 주면서 말했다.

“네가 만일 춥고 배고픔을 참기 어렵거든 나가도록 하여라. 나는 너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집종은 울면서, “상전께서는 반 사발을 잡수시고 쇤네는 한 사발을 먹는데 어찌 감히 배고프다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굶어 죽는다 하더라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상전을 따라 부지런히 베를 짰다.

홍은 자리도 치고 신도 삼되 밤낮으로 조금도 쉬지 않았다. 더러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울 밖에 앉혀두고, “자네는 이제 나를 사람의 도리로 따져 꾸짖지 말게. 10년 후에 서로 대면하세.” 하고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 지 3, 4년 만에 재물이 약간 모아졌다. 마침 무전에 논 10두락과 밭 며칠갈이가 나서 홍은 값을 치르고 사들였다.

봄갈이 때가 되자 홍은 고심을 하였다.

“많지 않은 전답을 어떻게 사람을 사서 경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노력하는 것만 못한데, 다만 농사일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겠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드디어 이웃 마을에 사는 농사에 경험이 많은 노농(老農)을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풍성하게 대접해서 언덕 위에 앉히고 친히 쟁기를 잡고 노농의 지시에 따라 쟁기질을 하게 되었다. 갈고 김매는 일을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세 배나 하니, 추수한 곡식이 다른 사람보다 배나 되었다.

밭에는 담배를 심었는데 때마침 크게 가물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길어다 주었다. 그래서 온 경내의 담배가 다 말라 시들었으나 허홍의 담배만은 무성하게 자랐다. 서울의 연초 상인이 찾아와서 미리 수 백금으로 허홍의 담배를 사갔는데 그 순이 무성하여 또 후한 값을 받으니, 담배농사의 이득이 400금이나 되었다. 이와 같이 5~6년을 하니, 재산이 점점 늘어서 노적의 곡식이 400~500 석이나 되었다. 100리 안에 있는 전답들이 모두 허홍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의식의 검소함은 전일과 다름이 없었다.

그 형과 아우가 절에서 처음으로 내려와 홍의 내외를 만나보았다. 홍의 아내가 쌀밥 세 그릇을 차려 들여가니, 홍은 불끈 눈을 부릅뜨고 꾸중하며 그 밥을 가져가고 다시 죽을 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 형이 성내어 꾸짖었다.

“너의 가산이 이처럼 부자인데도 나에게 밥 한 그릇을 먹이지 않는단 말이냐?”

“제가 이미 10년으로 한도를 정하였으니, 10년 전에는 밥을 먹지 않기로 마음에 맹세하였습니다. 형님도 10년 후에는 제 집의 밥을 잡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형님이 비록 제게 화를 내신다 하더라도 저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형은 화가 나서 죽도 먹지 않고 도로 절에 올라갔다.

이듬해 봄에 형과 아우는 나란히 소과(小科)에 급제했다. 홍은 돈과 비단을 많이 가지고 상경하여 급제증서를 받는 데 따른 비용에 대비하였고, 급제자를 따르는 광대들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날로 광대들에게 타일렀다.

“우리 형님과 동생이 지금 비록 소과에 급제했다 하더라도 또 앞으로 대과가 있에서 또 절에 올라가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이 머물러 있는 것이 무익하니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러면서 각기 돈푼씩을 주어 보내고는 그 형과 아우에게 말하였다.

“10년 기한이 아직 되지 않았으니 바로 절에 올라갔다가 기한이 차기를 기다려서 내려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형과 아우를 그날로 즉시 절로 올려 보냈다.

10년 기한이 차니 홍은 엄연히 만석꾼이 되었다. 홍은 좋은 옷감을 끊어다가 새로 남녀의 의복 각각 두 벌씩을 짓고, 마부와 말을 형수와 제수의 집으로 보내서 약속한 날 데려오고 또 마부와 말을 절에 보내서 형과 아우를 맞아왔다.

이렇게 하여 3형제의 가족이 단란하게 한 집에 모여 며칠을 지낸 다음 홍은 형과 아우에게 말했다.

“이 집은 좁아서 살 수 없습니다. 제가 마련해둔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삽시다.”

그리고 나서 이내 3형제 식구들은 모두 떠났다. 몇 리쯤 가서 고개 하나를 넘었더니 산 아래에 큰 동네가 있고 그 동네 속에는 큰 집 한 채가 있었다. 앞에는 긴 행랑이 있어 노비와 마소가 그 속에 가득하였고, 안집은 세 채이고 바깥 집은 한 채인데 매우 넓었다. 3형제의 처들은 각각 안집 한 채씩을 차지하고 3형제는 함께 한 방에 거처하며 긴 베개와 큰 이불을 사용하였는데 그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이것은 제가 경영한 것인데 가족들 모르게 암암리에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홍은 이내 노복을 시켜 목함(木函) 너댓 쌍을 들여와 앞에 놓게 하고는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전답문서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또 말했다.

“가산을 이렇게 모은 것은 제 처가 고생을 한 결과이니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이 없을 수 없습니다.”

홍은 스무 섬지기의 논문서를 그 처에게 주고, 3형제가 각각 50두락씩 나누었다. 그래서 이후로는 의식이 극히 풍족하였다. 그 이웃 마을에 사는 일가 중에 가난하게 사는 자들도 알맞게 도와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하루는 홍이 슬피 우는 것이었다. 그 형이 괴상히 여기고 까닭을 물었다.

“지금은 우리들 의식이 삼공(三公)과 바꿀 것이 아닌데, 무슨 부족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슬퍼하느냐?”

“형님과 아우는 이미 공부를 해서 다 소과에 급제하여 이미 출신을 하였는데 저는 치산(治産)에 골몰하느라 학업을 묵혔으니 바로 보잘것없는 우준(愚蠢)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선친께서 기대하신 것이 저에게는 모조리 없어졌는데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나이가 많으므로 유업(儒業)을 다시 시작할 수 없으니 붓을 던지고 무(武)에 종사하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홍은 이날부터 활과 화살을 준비하여 활쏘기를 익혀서 몇 년 뒤에 무과에 올랐다. 홍은 상경하여 벼슬을 구한 끝에 내직을 부여받았고 품계가 올라 안악군수(安岳郡守)에 제수되었다. 부임할 기일이 정해졌는데, 갑자기 그 처의 상을 당하게 되었다. 홍은 한숨 쉬고 탄식하였다.

“내 이미 양친이 안 계시는 영감하(永感下)라 녹봉으로 봉양함이 미치지 못하는데, 그래도 외임(外任)에 부임하려고 한 것은 노처(老妻)가 일생 동안 고생하던 것을 한 번이라도 영광스럽게 해주려고 하였던 것인데 처마저 또 죽었으니, 내 어찌 부임하리오.”

홍은 이내 사직을 올려 하향하고 여생을 마쳤다 한다. 이 이야기는 『청구야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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