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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에 얽힌 전설

허생(許生)은 방외인(方外人)이다. 방외인이란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집이 가난한데도 글만 읽고 식구들을 위하여 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주역(周易) 한 권이 항상 놓여 있을 뿐 여러 날 끼니를 걸러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길쌈을 해서 조석을 잇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생이 안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머리를 팔아다가 양식을 구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보고 허생은 탄식하며 말했다.

“10년 동안만 더 고생을 하시오. 그러면 머리도 자랄 것이니.”

이 말을 마치자 그는 관(冠)을 집어 쓰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허생은 그 길로 바로 송경(松京 : 개성)의 갑부 백가(白家)를 찾아가서 돈 천 냥만 꿔달라고 했다.

백 부자는 그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고 선뜻 천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이 돈을 가지고 평양으로 가서 명기(名妓) 초운(楚蕓)을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호탕한 술자리를 날마다 벌이고 호객(豪客)들과 더불어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지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내다보니 돈이 다 떨어졌다. 허생은 다시 백 부자를 찾아가서 말했다.

“내가 큰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니 3천 냥만 더 빌려주시오.”

백 부자는 이번에도 두말없이 돈을 내주었다.

허생은 또다시 초운의 집을 찾아 주렴금상(珠簾錦床)에 날마다 술을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그 돈을 다 써버렸다. 그는 또 백 부자를 찾아갔다.

“이번에도 3천 냥만 더 있으면 성사하겠는데, 그대가 내 말을 믿겠소?”

그 말을 듣고 백 부자는,

“그게 무슨 말씀이오. 다시 만 냥을 달래도 내드리겠소” 하며 선선히 돈을 내주었다.

허생은 또 평양으로 가더니 이번에는 명마(名馬) 한 필을 사서 초운의 집 마구간에 매어두고 커다란 자루 하나를 만들어 벽에 걸어놓았다. 이런 준비가 끝나자 허생은 전보다 더 큰 술자리를 벌이고 남은 돈을 모두 술값으로 초운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하여 돈이 또 떨어진 허생은 처량하고 난처한 빛을 감추지 못하게 되었다.

초운은 돈만 아는 기생이라 돈 때문에 허생을 극진히 대접했지만, 이제 돈이 다 떨어진 실정을 아는 바에야 하루인들 묵혀둘 까닭이 있겠는가? 내일이라도 허생이 떠나주었으면 하는 심정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이 기색을 알아차린 허생은 초운을 향하여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올 적에는 장사를 해보려고 온 것인데, 벌써 밑천 만 냥이 다 없어졌으니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 떠나려고 생각하니 너를 차마 작별할 수가 없는데 너는 연연한 생각이 없느냐?”

그 말에 초운은 이렇게 대답했다.

“열매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고 꽃도 지면 나비가 오지 않는 법인데 무엇을 그리워하겠습니까?”

“내 재산이 모두 여기에서 없어졌으니 나는 영구히 너와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구나. 내가 떠나는데 너는 무슨 물건을 주어 전별(餞別)하겠느냐?”

“무엇이든 소원대로 가져가시오.”

이에 허생은 방구석에 놓인 오동(烏銅) 화로를 가리키면서,

“저 화로나 내게 다오” 하니 초운은 두말없이 내주었다.

허생은 그 화로를 들어 힘껏 마당에 메쳐서 여러 조각으로 깨뜨리더니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자루에 넣어 명마에 실었다. 그리고 당일로 개성으로 와서 백 부자를 찾아보고, 그 자루 속에 있는 부서진 화로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제 일이 이루어졌소.”

하지만 백 부자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허생은 그 화로를 다시 말에 싣고 바로 회령(會寧)으로 가서 장바닥에 펴놓고 앉아 있었다. 얼마 안 되어 호복(胡服) 차림을 한 상인 하나가 다가와서 부서진 화로를 만져보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얼마에 파시겠소?”

“이 물건은 무가보(無價寶)요.”

“10만 냥이 비록 적지만 이 값에 그 물건을 파시겠소?”

상인이 그렇게 말하자 허생은 그 사람을 한참 쳐다보다가 승낙하니 흥정이 쉽게 이루어졌다.

그 돈을 가져다가 백 부자에게 주자, 백 부자는 어찌된 일이냐고 영문을 물었다. 이에 허생이 대답했다.

“그 깨진 화로는 동(銅)이 아니고 바로 오금(烏金)이오. 옛날에 진시황이 서시(徐市)를 시켜 불사약을 캐러 동해로 보낼 적에 내탕(內帑)에 있는 오금로(烏金爐)를 내주었던 것인데, 그 화로에 약을 달이면 그 약이 만병을 다 고치는 것이오. 서시가 이것을 가지고 가다가 바다 속에 잃었던 것을 왜인이 얻어다가 국보로 삼았었고, 그 뒤 임진년 난리에 평행장(平行長)이 가지고 왔었는데 평양에서 패주(敗走)하다가 난군(亂軍) 중에 잃었소. 이것이 초운의 집에 있는 것을 내가 망기(望氣)하고 찾아가서 만금을 주고 바꾼 것이오. 화로를 사간 호상은 서역 사람으로서 역시 망기하고 쫓아와서 사 갔기 때문에 10만 냥이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이오.”

이에 백 부자가 말했다.

“10만 냥도 얻기가 그렇게 용이한데 어찌 그리 고생을 하시오?”

“이번 일은 신물(信物)이 도와서 된 일이지, 어찌 천하사(天下事)가 용이한 일이 있겠소?”

이 말을 듣고 백 부자는 탄식하며 말했다. 10만 냥을 그대로 허생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나 허생은 웃으면서,

“어찌 그대는 나를 희롱하는가? 내 비록 방 안이 텅 비어 있지만 글을 읽는 것으로 마음을 즐겁게 할 뿐이니 이번에 한 일은 한번 시험해본 것일 따름이오” 하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백 부자가 사람을 시켜 그 뒤를 따르게 했더니 허생은 자각봉(紫閣峰) 밑 조그만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백 부자는 허생의 집을 알아두고 매월 초하룻날 새벽이면 돈자루를 가져다가 그 집 문 안에 놓고 갔는데, 그 돈은 한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돈이었다. 허생도 그것만은 웃는 얼굴로 받아서 생계를 꾸려가도록 했다.

이상공(李相公) 완(浣)이 북벌계획을 세워 인재를 구하다가 허생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날 밤 미복으로 찾아가서 천하사를 의논하면서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허생이 말했다.

“공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공께서 큰 일을 하시고자 하면 이제 내가 제시하는 세 가지 일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이완이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시오.”

그러자 허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인(黨人)들이 용사(用事)해서 만사를 그들 멋대로 하고 있으니 공이 능히 주상께 아뢰어 당론을 없애고 인재를 골라 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군대를 뽑고 조포(粗布)를 거두는 것은 한 나라 백성의 수고이니, 공은 능히 호포법(戶布法)을 실시하고 아무리 경상(卿相)의 자제라도 입대하는 것을 피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까닭에 어염(魚鹽)의 이(利)는 있소. 하지만 저축(貯蓄)이 많지 못해서 곡식이 1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땅이 삼천리에 지나지 못하는데 예법(禮法)에만 구애되어 오로지 외식(外飾)만을 일삼고 있으니 능히 온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호복(胡服)을 입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또한 어렵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를 모두 못하겠다고 하자, 허생은 화를 버럭 냈다.

“네가 시의(時宜)를 알지 못하면서 망녕되어 대계(大計)를 행하려 하니 무슨 일을 이루겠단 말이냐. 썩 물러가라.”

이공은 등에 땀이 흠뻑 나가지고 그저 다시 오겠다는 인사만 하고 도망하듯 돌아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시 찾아가보니 거기에는 쓸쓸한 빈 집만 한 채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계서야담』과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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