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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물거리의 전설

고려시대 원적산에 공민왕이 피난을 왔었다 하여 공민봉인 옆 산이 마치 덕이 후한 듯한 산세여서 이름조차 천덕봉(天德蜂)이란다.

하늘을 찌를 듯 장려하게 치솟은 천덕봉 낙맥을 따라 원적산 준령이 을씨년스럽게 뻗어내린 아늑한 산곡을 한 마리의 사슴이 치달리고 있는 듯하여 지명이 주록리(走鹿里)이다.

바로 이곳과 연해진 원적산 낙맥 아래 듬성듬성 흥천면(興川面) 내 상대리(上大里), 다대리(多大里), 하다리(下多里), 복대리(卜大里), 외사리(外絲里)라 불리는 지역이 38대를 두고 장상(將相)이 난다는 금반형(金盤形)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는 곳이기도 한 복하천으로 흘러드는 연변에 큰 늪이 있었다고 한다.

산경이 수려한 이 고장에 머물러 살던 옛 시인 구암 전원식(田元植) 선생은 원적팔경(元績八景)이란 시에 이르기를, “원적산 앞 질펀한 들녘에(元積山前一大平), 봄이 찾아드니 여기저기 소모는 소리 드높고(春來西起叱牛聲). 농요의 여러 가락이 사람의 뜻을 강인하게 하여(幽歌數調强人意). 이익만 추구하는 와중에 이것이 태평이더라(競利穿中是太平)”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이곳은 닭 모이를 옥녀가 주는 형세로 옥녀미락형국(玉女米洛形局)이란다.

범이 웅크리고 앉아 앞산 기슭 묘를 파헤치는 형세의 자치고개도 있는데 원래 원적산은 주인이 되고 앵자봉은 객이 된다고도 하는 변방 장관대에 거북바위가 있어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들이 지성을 드리는 이 바위가 아쉽게도 짖궂은 사람에 의해 목이 잘리고 몸매만이 갖은 풍상을 고고히 견뎌오고 있다.

닭이 두 발로 모이를 찾아 땅을 헤집고 노는 곳이라는 흙두더지와 목청 돋궈 우는 계명제 알둥지를 닮았던 햇모루 안팎 사방 십 리가 야고두상(野孤頭上) 용암지하(龍岩地下)하여 금반형 인데, 이 연변에 석화촌(石花村)이 있으나 이곳은 금반형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그 사연인즉 석화촌은 일명 돌꽃이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원적산에서 줄기차게 뻗어내린 용세가 용두형으로 머문 머리부분이 큰 집채만한 차돌로 되어 어떻게 보면 병풍처럼 바위가 생겨 그림 같은 꽃이 돌에 있어 석화촌이라고 동리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석화촌에는 머슴을 여럿 두고 잘사는 큰 부자가 있었으나 인색하기가 소금보다도 더 짜다고 소문났다. 그 집에는 아낙이 죽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들어와 사는 머슴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몸에 병이 들자 불행하게 먹는 것도 아깝다고 내쫓기어 엄동설한에 밤거리를 방황하다가 어린 자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 마침 이 동리의 산세가 좋아 과거 공부를 하러 온 생원 한 분이 있었는데 장례비를 보태주어 장례를 잘 모시게 하고 혼자 남은 홍 머슴의 아들에게 노자를 후히 주어 어디든지 가서 열심히 잘 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 길로 홍 머슴의 아들은 어디론가 떠나가고, 수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 깊은 산중 어느 명찰로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여 어엿한 승려가 되어 옛 살던 석화촌에 돌아와 시주를 구했으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옛 머슴 살던 집에 이르니 백발이 성성해진 인색한 부자가 나온다. 시주할 생각은 않고 사람 찾아오는 것이 성가시다며 방도를 일러달란다. 승려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석화(石花)에 시선을 주고는 말을 할 듯하다가는 그냥 입을 다물고 총총히 돌아서서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인색한 부자는 필시 저 석화암만 깨 없애면 될 것이란 짐작으로 사람들을 풀어 석화암을 깨었다. 바위를 깨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붉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 바로 아래 논을 붉게 물들였다. 그로 해서 지금까지도 이 논을 피파뱀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 후 이 동리는 감당할 수 없는 숱한 재앙이 닥쳐와 황폐해졌다.

어쩐지 매년 과거에 떨어져 과거 공부를 하러 이곳에 왔던 생원은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데 꿈에 승려가 나타나 가랑잎에다 비기(秘記)를 써서 불에 태운 재를 소(沼)에다 뿌리면 재앙이 그친다는 선몽을 받았다. 과연 선몽을 받은 대로 하니 신기하게도 재앙이 모두 그치는 게 아닌가?

그 후 생원은 장원급제하여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어사가 되어 해가 저문 후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어사는 수행하던 사람들을 객관에 쉬도록 하고 혼자서 밤바람을 쏘이려고 거리로 나섰다. 늪(沼)이 있는 근방 여호내들에 전에 보지 못하던 제법 괜찮아 보이는 덩실한 기와집 한 채가 있어 문 안에 들어서며 주인을 찾으니 집은 술집인 듯싶은데 잠시 후 미색이 빼어난 처자가 나왔다.

어사는 이런 주막에 처자가 혼자 있는 것이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도 안으로 들어갔다. 어사는 이내 깊은 잠이 들고, 사경(四更)이 되었을 즈음, 어사는 섬짓 소스라치게 놀라 이상한 꿈을 꾸고 깨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그 좋던 집과 처자는 온데간데 없고 고목나무 아래 뭔가 몸을 칭칭 감고 혀를 낼름대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천 년을 못 채운 이심이인데 동리 사람들이 돌꽃이를 부술 때 내 남편이 바위아래 도사리고 있다가 그만 목이 잘려 피를 토하고 죽어 그 원수를 갚으려고 동네에 재앙을 내렸더니 네놈이 방해를 하여 한이 되게 하였다” 하는 것이다. 한을 풀지 못한 대신 어사를 물어뜯어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어사가 사정을 한다. 어려운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되어 좋은 일을 할 때가 되었으니 너도 좋게 되고 나도 살 방도를 일러달라고 사정을 하니, 천 년을 다 채우는 날이 바로 오늘인데 마른 가랑잎을 소(沼)에 뿌려주고 천 년 이상된 목탁 치는 소리를 들으면 놓아주겠다는 것이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실의에 차 있는데 잠잠하던 새벽하늘의 밤공기를 가르며 별안간 세찬 바람이 가랑잎을 몰고 와 우수수 소에 떨어지고, 어디선가 분명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이때 이심이는 풀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사는 살았다. 그 후 어사는 꿈속에 나타났던 홍머슴의 아들인 승려를 찾아 방방곡곡 사찰을 두루 다 찾아보았으나 영영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하며, 다만 홍머슴의 아들이 승려가 되어 열심히 불도를 닦아 꿈속에까지 나타나 선몽을 하여 동리를 재앙으로부터 구해주고, 또한 어사를 구해준 동리 이름은 오늘날까지 석화촌이라 불려오고, 하마터면 어사가 이심이에게 물려갈 뻔했던 곳을 이 고장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어사 물거리라고 부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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