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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촌 박씨포의 전설

저녁 노을 곱게 물든 여강, 춤추듯 강물을 이지러뜨리는 바람을 타고 밀려 떠가는 황포돛배 난간에서 점점 눈 안에 선연히 들어오는 여주의 경관을 바라보던 목은 이색은 얼핏 시 한 수가 떠올랐다.

“호연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여강의 한 굽이와 산은 그림 같아 단청을 닮았고 반은 시를 닮았도다(天地無涯生有涯 浩然歸志俗何之 驪江一曲山如畵 半似丹靑半似詩)”라고 589년 전 여강을 찾아들면서 목은 선생이 남긴 절창이다.

원적산, 양자산, 앵자봉, 용문산이 한 폭의 병풍처럼 드리워진 드높은 산세를 뒷배경으로 구진비리와 왕터의 완만한 산세는 여계수에 이르러 봉이 솟아 용두혈(龍頭穴)을 이뤄 마치 한 마리의 용이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형국이다.

이 용두가 바로 북성산을 향해 여계수 물살을 막으면서 좌정한 뒤로 장작터 산봉이 마치 여인와안형(女人臥眼刑)으로 아름다운 조형을 이룬 새로 봉이 우뚝 솟은 북성산이 주산을 이루어 멀고 가까운 산봉을 꽃잎처럼 포용하고 있다.

이렇듯 연자탄 여울목에서 바라다보이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은 천태만상의 형상으로 빼어나 기치창검형(旗幟槍劍形) 또는 문필산봉(文筆山峰)과 어대형(魚袋形)으로 여러 모양의 즐비한 귀봉(貴蜂)이 정기를 뿜으며 혈을 비춰주고 있는 사이로 여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바로 여강이 굽이쳐 흐르는 연자탄(燕子灘) 여울목 아래 수촌(水村)을 박씨포(朴氏浦)라 부르고 그 언덕 질펀한 들녘을 박씨(朴氏)개 들이라 부르는데 고려 말 공민왕 때 병부참정(兵部參政) 익재공신(翊載功臣) 삼중대광문하시중 평장사익 충민공 박경무(三重大匡門下侍中 平章事謚 忠民公 朴敬茂)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도사가 산수가 수려하고 곡식이 잘 익는 여흥(驪興)땅에 가서 살라는 선몽을 받고 이곳으로 찾아들어 박씨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민공은 당시 조야(朝野)에서 일컬어지길 “지절은 찬서릿발을 능가하고 절릉상(節凌霜)임군 모신 호랑이네(殿上虎)”라고 정평을 받고 드날렸다. 공민왕으로부터 사시(賜詩)도 받은 충민공을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선생이 찬시(讚詩)하길 “고운산 맑은 물의 정기를 받고 박씨(밀성) 가중에 범 같은 인물이네(麗山明水敏情靈 朴氏家中人嶺虎). 높은 의지와 기재는 뭇 신하가 겁을 내고 우람한 영웅 풍채는 천지를 진동시키네(靜嶸義氣劫衆臣 咆哮英風振九干). 백성을 편하게 살게 하기 위해 큰 책임을 지고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감에 공헌이 크네(安民丕責小人懲 濟世洪獻君子主). 평생에 지키는 바는 지성심이요, 나라를 위하는 묘책은 가슴을 찌르네(平生所守一誠心 輔國深謀思肺腑)”라고 찬하였다.

박씨포는 우두산 낙맥에서 줄기차게 뻗어내린 산세가 강안에 다다라 용트림하듯 박씨개 들에 한 줄기로 흘러온 개울물이 세 갈래로 나뉘어 강으로 흘러든다.

용이 잠든 듯한 수룡산(睡龍山)의 낙맥을 따라 수하(水下)로 꿈틀꿈틀 살아서 움직이듯 청룡과 황룡이 생동하는 감흥을 느끼게 하는 용두(龍頭)가 제비처럼 빠른 속도로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비틀 듯 물살을 영릉 방향으로 틀며 강물 중간까지 뻗친 용세는 청룡도강형(靑龍渡江形)이라고 한다.

다른 한 마리의 황룡은 청룡이 드센 물 흐름을 막은 아래서 다시 수용산을 향해 용두를 돌렸다 하여 정룡수면형(靜龍渡江形)이라는 촌로(村老)들의 말이다.

예로부터 우두산 낙맥인 수룡산은 강 건너 왕대리(王垈里 : 왕터)와 수하로 지맥이 통하고 있는 같은 혈이라는 것이다.

흔들바위와 애기 업은 바위, 족두리 바위, 상여바위, 쌀이 나왔다는 마당바위 등이 듬성듬성 박힌 아래 수룡함주형국(睡龍含珠刑局)에 아늑하게 자리한 충민공의 묘소 한 발 너머에 옛날 무자(無子) 귀신을 위해 원(員)이 제사를 드린 사당이었던 기슭에 일대석(一大石)이 있으니 이를 사람들은 망부석(望夫石)이라 하였다.

충민공은 풍수지리에도 무척 밝은 분이었는데 노환으로 임종시 유언하길 수룡산은 잠을 자는 용의 형세인데 잠이 깨어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잠이 깨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니 그 액운을 막자면 망부석에 “……”하고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을 못하고 안타까이 운명하고 말았다. 충민공이 세상을 떠난 얼마 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무 탈없이 연자탄을 운행하던 황포돛배가 파선되어 툭하면 인명피해가 나고 뗏목이 파고 동리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는 등 마을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도사 한 분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되어 촌장이 사연을 말하고 예방책을 일러 달라고 애걸하니 망부석(望夫石)에 잠깬 용이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라며 저 망부석을 쓰러뜨리면 무사할 것이란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수촌의 장정들이 우르르 몰려가 덩실하니 서 있던 망부석을 쓰러뜨리고 동리로 돌아오니 병든 사람, 미친 사람들이 멀쩡하게 나아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수십 명의 장정들이 쓰러진 망부석을 다시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수촌(水村)의 촌장이 다급하게 쫓아가보니 그 장정들은 강 건너 왕터마을 사람들이었다. 사연인즉 며칠 전부터 마을에 자꾸 불이 나 어느 점술가에게 물으니 수촌의 망부석이 쓰러지면 왕터에 불이 난다 하여 액운을 막기 위해 망부석을 세우러 왕터마을 사람들이 왔다는 것이다.

왕터 사람들이 돌아간 후 수촌마을에 병이 쾌차했던 사람이 다시 몸져 눕고 강물에 사고가 잇달아 어쩔 수 없이 망부석을 쓰러뜨리니 며칠 후 왕터 사람들이 또다시 와서 세우고 그렇게 몇 해를 되풀이하므로 두 마을은 무척 사이가 나빠졌다. 그런 와중에서 충민공이 촌장 꿈에 나타나 뒷동산에 약물탕을 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선몽을 하여 그대로 샘물을 파니 모든 액운이 멎어 두 마을 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고 배와 뗏목도 무사하게 운행을 하게 되어 그때부터 박씨포와 박씨 개들의 전설이 전해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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