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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의 전설

아득한 천릿길 황막한 벌판을 비룡처럼 준마가 달려오고 단숨에 준봉을 뛰어넘어 장군기(將軍旗)가 펄럭이는 깃대봉을 향해 쌍마(雙馬)가 치달아오를 듯 천마산(天馬山)이 좌정한 언저리가 금당리(金塘里)이다.

옛 지명은 시내에서 가장 남쪽에 가까워 근남면(近南面)이었다. 이 이름이 금당리의 조촌동(朝村洞)으로, 임진왜란을 겪고 송당동(松塘洞)으로, 경미년 난리를 당한 후 금당리로 바뀐 것으로 6·25 전쟁 등의 전란을 겪어온 백천 조씨(白川趙氏)가 400여 년(14대)을 지켜 살아온 마을이다.

산세의 높고 낮은 굴곡이 절묘하고 섬세하며, 꽃봉오리처럼 에워싼 첩첩한 영마루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솜처럼 피어난 뭉게구름은 하염없이 떠가고, 옥구슬을 구르듯 꾀꼬리 울움소리가 한여름 산곡에 무한무진의 산경과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며 연속되는 경관은 사뭇 감동적인 산세명(山勢名)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금당리는 태조 이성계가 등극한 후 명으로부터 조선이라는 국호를 받아오는 데 큰 역할을 한 조림(趙琳)의 후손인 함경북도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 겸 경성도호부사(鏡城都護府使) 조상주 장군(趙相周 將軍)이 태어나 자란 고장이란다.

자가 익성(翊聖)인 조상주의 유집(遺集)에 「차진북루 판상운(次鎭北褸 坂上韻)」이란 시문에 읊조리길 “높고 높은 누각은 북관을 지키는데 올라가면 아득히 남방이 보이누나(百尺層樓鎭北關登臨可見漠南間). 드넓은 땅은 펼쳐서 바다에 이르고 하늘은 긴 강을 막아서 백두산을 띄었네(地分大野連滄海 天塹長江帶白山). 은 달이 군막에 비치니 흥겨운 일 흡족하고 봄이 장군막에 깊었으니 낮잠이 한가롭다(月入籌軒豪興足 春心玉帳晝眠閒). 지금같이 태평한 시절에 봉화들 일 없으니 국경을 지키는 군인도 아무 근심 없어라(卽今聖代烽無警 戊客何曾若顔).”라고 진북루에서 그 시대 태평함을 명시문(名詩文)으로 남긴 병사공(兵使公)이 자란 금당은 장군대좌형국(將軍大坐形局)이란다.

멀리 오압산을 넘보면서 마치 쌍마가 적진을 향해 휘달리는 형세인데 사면에 높고 낮은 굴곡을 이루며 자리한 산명(山名)과 동명(同名)만 보아도 가히 짐작이 되는 곳이다.

안금천(安金川)이 흐르는 연변 동명이 안장골로, 즉 말안장을 뜻하는데 탈안준마형(脫鞍駿馬形)으로 치달리는 말이 안장을 벗어 놓은 곳이라 하여 안장골이란다.

안장골을 지나면 공동묘 뒤로 마치 천하를 포효하듯 위엄 있게 도사린 산이 대포산(大砲山)인데 대포산에서 굽어보면 군마가 강금산의 깃대봉이 군기를 향해 진군하는 형세라고 한 바로 쇠뚜리에 진군의 무사와 승전을 기원하는 뜻으로 덕을 쌓은 듯 차곡차곡 쌓아진 바위가 있어 이 바위를 ‘덕싼 바위’라고 부르는데 연기처럼 우뚝 솟았다.

동남쪽으로 군사를 먹여 살린다는 뜻의 군량골이 있고, 완만한 산봉이 식량을 져내는 시루봉이며, 변방에 주걱산 투구봉, 장갑산, 철갑산이라 하며, 떡살 씻는 물이 청미천까지 흐른다는 떡바팅산 등등 군량과 장비가 이러하니 많은 군사가 주둔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물며 연대병력쯤 있을 법하여 연대산이 면내 중심에 드높다.

산세의 흐름이 장군대좌 형국답게 이러하니 어찌 이곳에 장상봉군(將相封君)이 아니 나오랴.

용맹스런 천마산의 쌍마가 치달아가다 말구유가 덩실하니 싱그러운 솔숲에 있으니 구슬 땀을 소나기 흘리듯 하며 달리던 준마가 말머리를 휙 돌린 그곳이 바로 철갑산인데 이 철갑산에 병조판서 조술행(祖述行)과 병사공 조상주 장군의 분묘가 있으니 봉두산(鳳頭山)과 조각산(鳥角山)이 장군대지지(將軍大之地)이다.

1650년 11월 10일에 여주군 근남면 조촌(朝村) 금당에서 태어난 병사공은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섬기는 데 정성이 지극하고 충효가 높아 어른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으며 자랐다.

조촌에는 서당이 없어 이웃마을 서당으로 공부하러 다녔는데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 허다했다.

산굽이를 감싸돌며 타박타박 귀가하는 그믐밤은 칠흙처럼 어두웠고,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올 뿐 등잔불도 점점 꺼져가고 하늘은 금새 비를 내릴 것만 같은 음산한 밤이었다.

동리 아이들 몇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숨소리도 크게 못 쉬며 총총 걸음을 재촉하여 부리나케 집을 향해 오고 있는데 난데없이 도깨비불이 나타나 길을 인도하고 있지 않은가? 모두 무서워 안절부절 망설이고 있는데 “애들아 이럴 때 빨리 가자”며 앞서 나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제일 나이 어린 조상주였다. 그 자리에 못 박고 서 있듯 꼼짝달싹 못하던 아이들이 긴 한숨을 내쉬며 조심 조심 도깨비불의 인도를 받으며 앞서가는 상주를 따라 집으로 오게 되었다. 더욱이 상주가 서당엘 가는 날이면 으레 그런 일이 있게 되니 상주는 점점 신동이 났다고 소문이 퍼졌다.

『정감록』에 “양금지간(兩金之間)에 가활만인피란지지(家活萬人避亂之地)하여 십이실지중(十二室之中)”이라 했다는데 군내 십이실은 구비실, 우뢰실, 모래실, 덕실, 음실, 품실, 다리실, 새미실, 마구실, 어실, 각기실, 오금실을 뜻하고 양금지간은 금대와 금교동 사이를 말하니 바로 금당이라는 것이다.

조상주가 젊었을 때의 일이다. 젓가락으로 술먹기 시합에서 다른 사람은 종지도 미끄러워 못 드는데 거뜬히 젓가락으로 한 양푼을 들어 마시니 모두 놀랐다.

진북루에 있을 때 몹시 가물어 식수난을 겪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우물 아홉 군데를 파니 모두 물이 잘 나와 이때 이곳에 살던 청인(淸人)들이 신인(神人)으로 대하였다니 덕망 높은 인품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사공이 7살 되던 해 어머님이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 의원이 꿩고기를 먹어야 원기가 빨리 회복된다고 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온 천지는 흰 눈으로 뒤덮이고 꿩을 구할 길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밤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멀지 않은 뒷산에 큰 바위 있는 데로 가면 꿩을 구할 수 있다는 선몽을 받고, 날이 밝자 신선이 일러준 곳에 가니 과연 큰 바위가 있고 하늘에 매가 떠서 뱅뱅 돌고 있지 않은가. 저만치 보니 꿩 두 마리가 머리를 박고 꼼짝 못하고 있어, 잡아다가 어머님을 잘 봉양해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그후로 신선이 선몽하여 꿩을 잡아 효도를 할 수 있게 해준 바위를 신성시하며 선바위라고 부르던 금당의 전설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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