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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경씨 중시조 묘에 얽힌 전설

흥천면 상백리 앞 월곡산(月谷山)에는 청주(淸州) 경씨(慶氏) 중시조(中始祖)인 진산공(珍山公) 면(綿)의 묘소(墓所)가 있다. 진산공 면은 원래 한양출생이었으며, 흥천면 상백리는 처가로 단양 장씨인 장참판(張參判, 白仁)의 본거지였다. 전설에 의하면 여주, 이천 경계지인 현 이천시 부발면 고백리(두무재)부터 위의 상백리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산이 장참판의 소유였다 한다. 진산공의 배(配)인 장씨(張氏)가 대사 한 분과 동승이 나타나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장씨부인이 무심코 들은즉, 동승이 대사에게 공의 묘소가 있는 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은 장씨가(張氏家)에서 ‘치표(묘소 예비지로 미리 정함)’는 하였으나 장차 경씨(慶氏)네 ‘자리’가 아닙니까?” 한즉 대사는 “경솔하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동승을 질책하였다 한다.

이 말을 들은 장씨 부인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구나, 내가 잘못 보고 잘못 듣지나 않았나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눈을 닦고 주위를 살펴보니 대사와 동승은 온데간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행방이 묘연하였다 한다. 장씨 부인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분간하기 곤란하였다. 그러나 문득 이는 하늘이 자기에게 계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후 은연자중하여 마음 속으로만 유념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장참판(경면의 장인)이 별세해서 장씨가에서는 예정대로 ‘치표’한 자리에 장참판의 묘소를 확정하고 장례를 서둘러 묘혈(墓穴)까지 다 파놓았다 한다. 장씨 부인은 몇 해 전 우물가에서 대사와 동승이 주고받던 이야기가 생각이 나 이를 곰곰히 생각한 끝에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비(侍婢)와 함께 계략을 꾸몄다. 장례 바로 전날 밤, 장씨 부인은 묘혈을 지키는 사람을 독한 술로 만취시켜 놓은 후 종과 함께 밤새도록 묘혈에 물이 가득하게 부어놓았다 한다.

다음 날 상주인 장씨 부인의 오라버니는 묘혈에 물이 가득하니 부득이 장례는 연기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결국 이 자리는 묘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버리고 다른 곳에 묫자리를 썼다 한다. 그 후 세월은 흘러 장씨 부인의 남편인 진산공이 향년 50세로 세상을 뜨게 되었다. 장씨 부인은 친가인 상백리 오라버니 집에 가서 간청하기를 오라버니는 산이 많으니 자기 남편을 모실 묫자리 하나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묫자리 구하기는 쉽지 않았음으로 장씨 부인은 용기를 내어 전일(前日) 아버지가 작고하였을 때 버렸던 그 묫자리라도 달라고 애원했다. 오라버니는 동생의 애원이 너무 간절함으로 거절치 못하고 부득이 승낙하였다. 이렇게 하여 쓴 묫자리가 청주 경씨 중시조인 진산공 면의 묘라 하며 앞서 말한 장참판의 묘는 이 묘에서 약 150m쯤 떨어진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산공의 묘자리가 좋아서 경씨 후예 중 3대 제학(堤學)과 대소과(大小科) 합격자가 쏟아져 나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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