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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명당의 계책

여주 장산(長山) 땅(옛날 原州 長山村)에 찬성(贊成)의 벼슬을 지낸 대감이 있었다.

품계로 종일품(縱一品) 둘째가는 재상이라 하여 이상(二相)이라 불리는 벼슬을 했지만 워낙이 청백리로 자손 하나 성가(成家)시키지도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그 아들이 형제이기는 하지만 상을 당한 그들로서는 초종 장례를 편히 모실만한 장지를 가리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어느 날 동생이 묘안을 내어 형제가 상의하고 다음날 시행하기로 결심했다. 형은 이튿날 집에서 얼마되지 않는 거리에 있는 나지막한 고개 언덕에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이 서성대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그때 의복과 행식이 초라한 50대 영감이 그 언덕을 넘게 되었는데 갑자기 상제 젊은이는 일언반구도 없이 비호같이 몸을 날려 그 영감을 번쩍 들어서 큰 나뭇가지에 거꾸로 발목을 묶어 매달아놓고 사라졌다.

무인지경이니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고 당황하여 꼼짝없이 죽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는 판에 하늘이 돌보았는지 어떤 사람이 달려왔다.

젊은이는 잠깐 사이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영감을 풀어주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숨도 가라앉아 우선 고마운 인사를 극진히 대하고 가만히 쳐다보니 자기를 살려준 그는 머리를 풀고 흰 두루마기에 한 팔만 꼬인, 아직 성복도 못한 초상상제가 틀림없었다. 길가다 혼이 난 행인은 비록 행색은 초라하나 조정에서 산천초목을 떨게 할 권세를 지녔다. 직첩(職牒)을 사직하고 낙향한 지 얼마 안되는 그 또한 이품직(二品職) 대감이었다.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온 당대에 이름 높은 지사였다. 젊은 상제들의 꾸며진 계략에 이 행인이 걸려든 셈이었다. 그때 그는 장산촌(長山村) 근처에서 명당지를 답사하기 위하여 자기 집에서 몇십 리 길을 매일 그 시간이면 이 언덕을 넘어갔던 것이다. 상제들의 이 계책을 알 리가 없는 그 대감은 생명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동안 답사했던 명당자리 하나를 골라주며 “내가 지금 수중에 가진 것도 없고 보아하니 젊은이는 상제이고 하니 내가 이 명당을 골라주는 것으로 우선 보답하니 그리 알게. 그리고 그 은혜 내가 훗날 영원히 잊지 않겠네” 하면서 좌향까지 잡아주었다.

장삿날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굳이 참석한다니 그 또한 막을 도리는 없다.

장삿날 상주들은 본 대감은 비로소 속은 줄을 알고, 꾀를 내었다.

“여보게 상주, 이거 어째 내가 일러준 좌향과 약간 어긋났으니 관을 들어내고 좌향을 바로 잡은 후에 하관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화를 면할 길이 없네. 서둘러 좌향을 바로잡아야 하겠네. 이대로 하관을 모셨다가 큰일나네” 하고 눈을 부릅뜨고 위엄 있게 말했다.

그러나 상주는 그 꾀에 넘어갈 리 없었다. “빈곤한 터에 산역군(山役軍)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면서 장례를 모시는데 어찌 시간을 더 지체하리까, 그대로 홍대를 덮고 현훈을 드려야겠습니다.”

대감은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대감은 자신의 불쾌함을 달래고 도리어 큰 인재감을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 것을 반갑게 생각했다. 상주들의 지혜도 영특하지만 대감 또한 큰 인재라 관후했다고 보겠다.

훗날 얼마 안 되어 상주는 공신에 책록되고 좌상(左相)에 이르러 국난의 위기에 충심으로 임금을 보필하고 국사를 돌봤으며, 대대손손 고관대작의 은덕을 누리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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