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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천장에 관한 전설

영릉(英陵)은 조선 제4대 왕인 세종대왕과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합장릉이다. 처음 광주 헌릉(廣州 獻陵)에 있었으나 1469년(예종 원년) 현 능지인 능서면 왕대리로 천장한 것이다. 이 능지가 풍수지리상 좋다 하여 천장한 것으로 이 영릉을 천장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100년은 더 연장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를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설이라고 한다. 이 영릉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원래 이 능(陵) 자리에는 어떤 대가집 산소가 있었다(광주(廣州) 이씨의 묘였다 함). 그 대가집 산소자리를 잡아준 지관이 여기에 묘를 쓰되 봉분도 만들지 말 것이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비각을 세우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재산이 불어나고 자손들이 번창하자 양반이요, 세도가의 집안에서 조상의 무덤에 분(墳)을 모으지 않고 비를 세우지 않겠는가?

처음 묫자리를 잡아준 지관(地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분(成墳)과 입비(立碑)를 해버렸다.

당시 조정에서는 영릉 천장론이 대두되어 각처에 지관을 풀어 명당자리를 찾고 있는 중으로 한 지관이 명당을 찾아 이곳 능서면 왕대리까지 오게 되었다. 때는 하절기 삼복더위 중이라 갑자기 천둥을 치면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지관은 삿갓 속에서 젖은 옷걱정을 하며 비 멎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소나기는 지나가고 주위가 밝아져 저 건너편에 1기(一基)의 분묘가 보였다. 순간 지관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는 명당자리였던 것이다.

자기가 몇 달을 두고 고심하며 찾던 명당자리임에 틀림없었다. 주변 산세와 지맥 등 몇 번을 보아도 이 묫자리가 천하의 명당자리였다. 지관은 지도에 위치와 방위를 표시한 다음 쏜살같이 대궐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지관의 말을 듣지 않고 비각과 분묘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 대가집의 묫자리가 누출되어 세종대왕의 능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 대가집의 분묘와 비각은 철거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가집의 묘를 이장함에 있어 연(鳶)을 날려서 이 연이 떨어지는 곳으로 묘를 이전케 했는데 연이 떨어진 곳이 연라리(현재 여주시 연라공)였다 한다. 연라리는 원래 연이 떨어졌다고 하여 연라리(煙羅里)였다는 말도 있다. 풍수지리상 과연 그런 명당지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관의 말을 듣고 봉분과 비각을 세우지 않았던들 이 대가집에서 국왕이 나왔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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