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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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삿갓바위와 대나무 숲

우왕을 추방하고 창왕을 폐한 이성계는 구파세력의 마지막 보루이며 청렴하고 강용(剛勇)한 장군이던 최영을 제거하고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의 추대를 받아 왕조를 개창하려 하였다. 이를 알아챈 정몽주가 신진 군벌(軍閥)세력을 숙청하려다 오히려 방원(芳遠)에게 격살되어 민심은 크게 동요되었다. 이태조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장단(長湍), 함창(咸昌)으로 유배되고 청주(淸州)의 옥에 갇혔던 이색을 불러들였다. 목은은 당시 문명(文名)을 드날리던 거유(巨儒)로 세인(世人)들의 칭송이 자자했던 인물이었다. 목은의 마음은 쓰러진 고려의 그림자에 있었다. 청주의 옥에 갇힐 때만 해도 정도전, 조준 등이 목은의 처형을 주장했지만 태조는 옛정과 그에 쏠린 민심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어서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어 상봉(相逢)을 요청하였다. 만조백관이 임석한 자리에서 태조는 뭇 신하들의 예를 받았으나 목은은 끝내 군신의 예를 하지 않고 궐문을 나섰다. 태조를 섬기던 신하들이 목은이 떠난 후 그와 같은 목은의 태도는 중벌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태조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한양을 떠나 여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망국(亡國)의 독신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키었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 봄풀이 푸르고, 짙어져가는 강안(江岸)의 풍경은 옛날 평양 부벽루에서 읊조렸던 시를 떠오르게 했다.

어제 영명사(永明寺)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浮碧樓)에 오르니 성(城)은 텅비고 달만 한조각 돌은 천추에 늙었는데 왕손(王孫)은 어디서 노는가 님은 가고 못오시네 긴 한숨 풍등에 기대이니 산(山)은 푸르고 강(江)물만 유연히 흐르는구나.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麟馬去不返, 夭孫何處遊, 長嘯倚風燈, 山靑江自流

배가 점점 여흥에 가까워지자 그의 마음은 더욱 비통하였다. 몇 년 전 우왕(隅王)이 강화를 거쳐 이곳으로 왔었고 강릉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선왕(先王)의 궤적을 더듬는 충신의 모습은 더욱 처량하였다. 또한 연자탄(燕子灘)을 지나면 신륵사(神勒寺)가 지척이지 않는가? 배가 신륵사에 닿으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나옹의 문도들이 반가이 맞았다. 뒤이어 경기도 관찰사가 태조가 보낸 어주(御酒)를 가지고 도착하였다. 강변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어주를 마시지 말라고 청하였으나 목은은 태연히 천명을 어찌 의심하랴 하면서 댓잎(조리대나무잎)으로 막은 술병마개를 손수 빼어 강물에 던졌다. 그리고 “내가 평생에 사욕(私欲)이나 권욕(權欲)으로 살았다면 이 댓잎은 그대로 강물을 따라 흘러갈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멀지않은 곳에 뿌리박고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하고 어주를 받아 마시고 눈을 감았다. 정략(政略)에 휘말린 충절의 죽음이었다. 태조는 목은의 장례를 후히 지내고 3일간 조회를 철회했으며 그 연유를 조사하여 관찰사를 파직시켰다. 다만 목은의 말대로 조리대는 제비여울 강변에 착근되어 무성히 자라 대숲을 이루었음이 『송화잡기(松窩雜記)』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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