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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고개

산북면에서 곤지암 쪽으로 1㎞ 가량 되는 곳에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고개의 양 옆은 구릉지이며 동쪽은 광주시 실촌면 건업리이고, 서쪽은 산북면 상품리이다. 이 지역에서는 이 고개를 남이고개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 하였다 하여 남이고개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도둑을 잡기 위하여 이 고개에 주둔한 일이 있다 하여 이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하기도 한다. 이 고개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는 금사면 후리(後里)마을 진입로 입구 좌측에는 고양이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길옆 산기슭에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남이장군이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과녁이었다고 하며 이 바위는 지금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는데 그때 남이장군의 화살을 맞아 갈라졌다고 한다. 또 남이장군은 백마를 타고 다녔는데 이 말은 매우 빨라서 이 고개에서 고양이바위를 향해 활을 쏘고 화살이 목표물에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말을 달려 이 바위에 와 보면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이 바위에 맞았다고 한다.

옛부터 이 고개에서 강원도 홍천군과 양평군 접경에 있는 신다고개[薪峴]까지를 무령백리(無嶺百理)라 하였다. 즉 이 사이에는 고개가 없는 평탄대로라는 것이다. 또한 강천면에 위치한 마감산(馬甘山) 등에 남이장군에 관한 전설이 구전되어오기에 사료(史料)에 기록된 그의 행적을 살펴본다.

남이장군은 조선시대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의산군(宜山君) 휘(暉)의 아들이다. 태종의 외손(外孫)으로 좌의정 권단의 4녀와 결혼, 1457년 17세로 무과(武科)에 장원하여 세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가 북관(北關)에서 난을 일으키자 우대장(右大將)으로 이를 토벌,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오르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서북변(西北邊)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고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대궐 안에 숙직하던 어느 날 밤 혜성(彗星)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깔릴 징조라고 말했다. 이에 평소에 그의 승진을 질투하고 있던 유자광(柳子光)이 이것을 엿듣고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하여 강순(康純) 등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그후 1818년 관작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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