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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지에 서린 전설(2)

지금의 함흥지방에 효심이 깊은 고달이라는 착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체유라는 노모와 달여(達如)라는 아내, 그리고 유달(有達)이라는 외동딸과 함께 가난한 생활에서도 행복하게 지냈다. 고달은 깊은 산속에서 닦은 불도(佛道)로 신심이 두터웠고 또한 훌륭한 석공이었다. 그는 고달사 중건을 위한 석공으로 부름을 받고 불사(佛事) 일을 돕기 위해 고달사(高達寺)에 오게 되었다 한다.

노모와 사랑하는 처자를 고향에 두고 평소 불심이 두텁던 고달은 막중한 역사(役事)를 자기가 맡게 된 것에 더욱 감격하여 훌륭한 작품을 남기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불사 일을 하기에 앞서 고달은 모든 잡념을 없애기 위해 100일 동안 맑은 물을 떠놓고 부처님께 정성을 들인 후 작업에 임하여 오직 돌을 쪼고 쌓고 다듬는 일에만 열중하였다고 한다.

한편 그의 고향에서는 남편 없는 세 식구의 생계가 아내 달여에 의해 유지되었으나 날이 갈수록 생활은 쪼들리고 마침내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달여는 날마다 동구 밖에 나와 고달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으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달여는 마침내 어린 딸 유달이를 업고 남편을 찾아나서게 되었다. 그때는 추운 엄동설한이었는데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지칠대로 지쳤지만 오직 남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먼길을 나선 것이다.

지금의 양평(楊平) 땅에까지 도착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에 못 이겨 외동딸 유달이를 여기에서 잃고 말았다. 달여는 어린 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천신만고 끝에 고달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고달이는 모든 잡념을 잊고 오직 불사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달여는 남편을 만나게 해주기를 애원했으나 불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만날 수가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당하였다. 남편 고달을 지척에 두고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고향으로 발길을 돌린 달여는 고달사(高達寺)에서 강북으로 약 10km쯤 떨어진 지금의 대신면 보통리(大神面 甫通里) 강가에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품은 채 영원히 눈을 감고 말았다고 한다.

고달이는 3년간의 불사를 마치고 노모와 처자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이미 노모는 돌아가신 후고 아내와 딸은 남편을 찾아 1년 전에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처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나섰으나 외동딸인 유달이는 지금의 양평(楊平)에서 죽고 아내인 달여는 지금의 대신면 보통리에서 객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와 딸의 시신을 찾아 따뜻한 곳에 무덤을 만들고 비를 세워준 후 고달은 그 길로 스님이 되었다. 36세에 모 대사의 제자가 되고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도에만 전념, 죽은 아내와 딸의 명복을 빌었다 한다.

지금의 대신면 보통리에는 원통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고달이의 아내 달여가 원통하게 죽었다 하여 생긴 것이라 한다. 그리고 고달이의 지극한 정성으로 불사를 완성하였다 하여 석공 고달이의 이름을 따서 사명(寺名)을 고달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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