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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장이의 딸을 정부인으로 삼은 이장곤

이장곤(李長坤, 1474~?)의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자는 희강(希剛), 호는 금재(琴齋)이다. 1495년(연산군 원년)에 생원시에 장원하고 연산군 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교리(校理) 때 왕의 비위를 거슬러 거제(巨濟)에 귀양 갔다. 한편 연산군은 이장곤이 일을 도모할까 의심하여 다시 포교(捕校)를 보내어 잡아오게 하였다. 이장곤은 죄를 더 받을까 두려워하여 함흥으로 도망을 갔는데, 도중에 목이 몹시 말랐다. 마침 물을 긷는 처녀가 있어 물 한 바가지만 주기를 청했더니, 그 처녀는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주는 것이었다. 이장곤이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처녀가 말했다.

“목이 몹시 말라 급히 마시면 체할까 염려되어 천천히 마시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장곤이 그 지혜로움에 놀라 다시 물었다.

“너는 누구의 딸이냐?”

알고 보니 건너편 유기장(柳器匠)집 딸이었다. 그는 곧 처녀의 집으로 따라가서 사위가 되어 몸을 의탁하였다. 이장곤 같은 서울의 귀한 손이 어찌 유기(柳器 :고리) 짜는 것을 알겠는가. 그는 날마다 낮잠만 자고 지냈다.

“내가 사위를 맞이한 것은 유기 만드는 일을 돕게 하기 위해서인데, 오직 밥만 먹고 밤낮 잠만 잘 뿐이니, 이는 곧 하나의 밥통이로다.”

유기장 부부가 노하여 아침과 저녁의 밥을 반으로 줄여버렸다. 그의 아내가 그를 불쌍히 여겨 매양 솥바닥의 누룽지를 긁어 더 먹여주었다.

이렇게 지낸 지 수년이 되었는데, 중종이 반정하고 조정이 일신되어 연산군 때에 죄를 얻은 사람을 모두 사면하였다. 이장곤의 관직도 도로 주어 팔도에 명령하여 찾게 하니,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장곤이 풍문에 그 소문을 듣고 장인에게 말하였다.

“관가에 매달 바치는 이번 유기는 내가 가져다가 바치겠소.”

“자네 같은 잠꾸러기가 동서의 방향도 모르는데, 어찌 관가에 상납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직접 바치더라도 번번이 퇴짜 맞기 일쑤이다. 당치 않은 말은 아예 하지 마라.”

곁에 있던 그의 아내가 말하였다.

“시험 삼아 한번 보내보도록 하시지요.”

그러자 장인이 비로소 허락하였다. 이장곤은 등에 유기를 짊어지고 관아의 뜰로 바로 들어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무 데 사는 유기장이 유기를 바치기 위해 와서 기다립니다.”

마침 그때 함흥부윤(咸興府尹)은 이장곤과 친했던 무관(武官)이었다. 그 무관이 이장곤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라 섬돌을 내려와서 손을 잡고 자리에 올랐다.

“공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런 모양으로 나타나셨소? 조정에서 찾은 지 오래되었소.”

이어서 술과 음식, 옷과 갓을 챙겨주었다.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 유기장의 집에 몸을 의탁하여 구차스럽게 목숨을 연명하다가 뜻밖에 다시 밝은 세상을 보게 되었소.”

함흥부윤이 순찰사영(巡察使營)에 급히 보고하여 곧 역마(驛馬)를 내어 상경(上京)하도록 재촉하였다.

“유기장의 집에 3년 동안 주객(主客)의 처지로 있었으므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고 겸하여 조강지처(糟糠之妻)의 의리가 있소. 지금 가서 작별을 고할 것이니, 그대는 내일 아침에 나를 찾아와 주시오.”

이장곤이 이렇게 말하고 유기장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달 유기를 무사히 갖다 바쳤습니다.”

장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였다.

“이상하다. 옛말에 ‘올빼미가 천년 묵으면 꿩 한 마리는 잡는다’ 하더니, 그것이 헛말이 아니다. 오늘 저녁밥은 조금 넉넉히 차려주어라.”

이튿날 아침에 이장곤이 일찍 일어나서 뜰을 청소하니, 장인이 좋아했다.

“우리 사위가 어제 유기를 잘 바치더니, 오늘 아침에 집 뜰을 청소하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도다.”

이장곤이 뜰에 짚자리를 까니, 장인이 의아해하였다.

“어찌하여 자리를 까는고?”

“오늘 사또가 행차하실 것입니다.”

장인이 비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게. 사또가 어찌 우리 집에 행차하겠는가. 이제 와서 생각하니 어제 유기를 잘 바쳤다는 것도 필시 길에 버리고 집에 돌아와서 허세를 부려 큰소리친 것이로구나.”

그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함흥부윤의 아전이 채색 자리를 가지고 헐레벌떡 와서 방안에 깔았다.

“사또 행차가 곧 당도하십니다.”

유기장 부부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사색이 되어 울타리 사이에 피해 숨어 있었다. 조금 뒤에 수령의 앞길을 인도하는 전도(前導) 소리가 문 앞에 들리고 본관사또가 당도하여 인사를 한 다음, 이어서 물었다.

“아주머니는 어디에 계시오? 청컨대 상견례(相見禮)를 행하겠습니다.”

이장곤이 아내를 불러내어 절하게 하였는데, 의복은 비록 남루하나 의용(儀容)이 매우 안온하고 예절이 발라 천한 상민 여자의 촌스런 태도가 없었다. 본관사또가 경의를 다하여 말하였다. “이학사(李學士 : 이장곤을 말함)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적에 아주머니의 힘으로 오늘이 있게 되었으니, 비록 의기의 남자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소.”

또 사또가 유기장을 불러 술을 권하고 따뜻한 말로 위로하였다.

이웃 고을 수령이 잇달아 오고 감사도 막료(幕僚)를 보내어 전갈하니, 유기장의 집 문밖이 사람과 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장곤이 본관사또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비록 천한 상민이나, 내가 이미 아내로 삼았으니 버리는 것은 불가하오. 원컨대 가마 한 채를 빌려주어 같이 가게 해주시오.”

본관사또가 그 말대로 들어주었다.

이장곤이 상경하여 임금에게 사은(謝恩)하니, 임금이 그에게 떠돌아다니던 전말을 물으므로 이장곤이 그 사실을 갖추어 아뢰었다.

“이러한 여자를 천첩(賤妾)으로 대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임금은 새삼 감탄하며 특별히 후부인(後夫人)으로 올려주었다.

이장곤은 벼슬이 우찬성(右贊成)에 이르렀다.

이장곤은 갑자사화 때 망명한 지 수개월 만에 한 번 집에 와서 본부인을 보고 떠나갔는데, 하루는 집에 이르니 마침 먼동이 트고 있었다.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대숲에 숨어 있었다. 부인은 1년이 지나도 남편이 오지 않자, 죽었을까 의심하여 무당을 불러 점을 쳐보았다. 무당의 답이 “죽지 않고 그림자가 뜰 가운데 있다” 하였다.

이장곤이 그 말을 듣고 그 뒤로부터 감히 다시 집에 오지 못하였다. 이장곤은 만년에 항상 “무당의 말도 헛말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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