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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 윤휴

윤휴(尹鑴, 1617~1680)의 본관은 남원이고, 자는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다. 효종 때 재학(才學)과 행희(行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世子侍講院咨議), 종부시 주부(宗簿侍 注簿), 지평 등 여러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교지를 모두 반려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했다. 그러나 송시열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이유태(李惟泰)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윤휴의 고고한 자세를 우려하였다.

“윤휴가 고고함을 굽히지 않고 교명을 모두 반려한 것을 보면 이 세상을 온통 벌레처럼 가볍게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송시열이 윤휴의 집에 들르면 며칠씩 묵으면서 침식을 잊을 정도로 담소하였다. 그것을 안 윤휴의 어머니는 아마도 송시열이 보통 손님이 아닐 것이라고 여겨 문틈으로 엿보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아들을 불러 신신당부하였다.

“내 그 사람을 보았는데 심술궂고 엉큼하며 그 말씨 또한 안정되어 있지 않고 아마도 속마음이 어질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조심하여라!”

그러나 어머님의 염려를 이해 못 한 윤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손님은 큰 선비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염려는 적중하여 윤휴는 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의 교리를 마음대로 해석하여 비난받은 사람)으로 몰렸으며, 허견의 역모에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끝내 사사(賜死)되기까지 송시열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을 안 뒤에야 사람들은 윤휴 어머니의 선견지명에 감탄하였다.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1680년 허견의 역모 등으로 남인이 실각한 사건) 때 남인들이 탄압을 받아 대거 몰락하게 되었으며, 이때 윤휴의 형제들 중 다섯은 유배되고 한 명은 배소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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