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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과 장사 박탁

이완이 효종의 신임을 받고 북벌에 대한 깊은 생각을 주고받을 때의 일이다. 국가 간성지재를 구할 목적으로 무예가 뛰어나거나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건 조정에 추천하던 시절이었다. 이완이 훈련대장이 되어 소분(掃墳 :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 조상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일)하기 위해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훈련대장의 행차가 용인 어느 주막에 다다랐을 때였다. 주막 마루에 키가 10척, 얼굴이 한 자나 되어 보이는 수염이 텁수룩한 청년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옷은 남루하고 살은 없이 바싹 말랐지만 기골은 장대하고 번쩍이는 두 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탁주 한 동이를 꿀꺽꿀꺽 다 마시는 것을 보고 이완은 말에서 내려 사람을 시켜 그 청년을 불렀다.

불려 온 그 청년은 이완 대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돌 위에 거만스레 걸터앉아서 이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는 탓하지 않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자네 성명이 뭔가?”

“박탁입니다.”

“무엇하는 사람이냐?”

“본시 사족인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 자랐으며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서 팔아 그것으로 노모를 봉양하고 있습니다.”

“술을 더 마실 수 있느냐?”

“아, 남아가 되어서 어찌 잔술을 사양하겠습니까!”

이완은 돈 100문(文, 1돈에 상당한)으로 술 한 동이를 사서 자신이 한 사발 마신 뒤에 나머지는 모두 박탁에게 주니 벌컥벌컥 순식간에 술 한 동이를 다 마셔버렸다.

“너 혹시 이완 대장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느냐? 내가 바로 이완이다. 지금 조정이 널리 인재를 찾는 길이니 너는 나를 따라 한양으로 가겠느냐?”

“노모가 계시니 저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겠구나! 그러면 내가 네 모친을 만나볼 터이니 앞장서서 네 집까지 길을 인도하라.”

이완은 박탁을 따라 시골길 10여 리를 가서 낡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이완은 박탁이 사립문 밖에 갈아 주는 자리에서 아들을 따라 나온 그의 어머니의 인사를 받았다. 입은 옷은 초라했지만 말씨나 행동은 양반집 아낙의 품위를 잃지 않은 60세쯤 되어 보이는 단정한 부인이었다.

“저는 훈련대장 이완이란 사람입니다. 길에서 우연히 자제를 만났는데 첫눈에 인걸임을 알았습니다. 훌륭한 자제를 둔 것을 경하합니다.”

부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여미며 대답했다.

“개돼지처럼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아이를 그토록 과찬해주시니 이 촌부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조정에서는 인재를 널리 구하는 중입니다. 이번에 자제를 우연히 만나보고 그냥 두고 가기 너무 아까운 인재 같아서 한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데 부인께서는 허락하실는지요?”

“저 아이가 독자로 태어난 후, 남편을 사별하고 오직 모자가 외롭게 서로 의지하여 살아왔습니다. 황송한 말씀이지만 장군의 명에 따를 수 없습니다.”

부인의 거절이 완강하자 이완은 재삼 간청했다. 이완의 간곡한 청에 감동되었는지 드디어 부인이 입을 열었다.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큰 포부와 뜻을 품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장군의 간곡하신 권고가 이러하신데 아녀자의 구구한 사정에 얽매여 장군의 말씀을 저버리겠습니까?”

이완은 부인의 용단에 감사한 뜻을 표하고 박탁을 데리고 발길을 한양으로 돌려 대궐로 향하였다. 이완은 효종을 배알하고 소분을 하지 않고 앞당겨 귀경한 연유를 아뢰었다. 효종은 박탁을 대면하고 몇 마디 물었다. 임금 앞에 나온 박탁은 절도 하지 않은 채 앉았다. 효종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몸집은 그렇게 큰데 어찌 그렇게 말랐느냐?”

“대장부가 때를 만나지 못했으니 어찌 안 그럴 수 있습니까?”

“하하하! 그래그래, 그 말이 맞다. 네 대답이 마음에 드는구나.”

효종은 박탁과의 첫 대면에서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이완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자에게 무슨 벼슬을 내려야 마땅하겠느냐?”

“우선 신이 데리고 가서 대략 가르친 뒤에 직책을 내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그날부터 이완은 박탁을 가까이에 두고 좋은 음식과 옷을 주고 병법과 무예를 하나하나 가르쳤다. 어찌나 머리가 영리하던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성과를 보였다. 또 효종의 관심도 매우 높아 박탁의 무예 공부를 자주 물었다. 혹 이완이 북벌에 대해 박탁에게 상의하면 이에 응답하는 박탁의 지모는 매우 우수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1년이 되어 가는 어느 날 국상이 났다. 효종이 승하한 것이다. 1659년 5월 4일의 일이었다.

효종의 인산(因山)이 끝나자 박탁은 작별을 고하러 왔다. 이완은 깜짝 놀라 만류하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나와 너 사이는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 정의는 부자간과 같은 사인데 네가 어떻게 차마 나를 버리고 떠난단 말이냐?”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먹고살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돕지 않아 갑자기 국상을 당했으니 이제 큰일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할 일 없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은 옷과 밥만 축낼 뿐이며 이런 낭비는 결코 옳지 못합니다.”

박탁은 손으로 눈물을 닦고 하직을 고하고 떠나갔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노모를 모시고 다시 산골로 들어간 이후로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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