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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볼 줄 아는 김안국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의 호는 모재(慕齋)이다. 모재는 벼슬하기 전부터 벌써 시를 볼 줄 안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판서 성현이 한 해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병을 요양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두보의 시를 숙독해서 율시 여덟 수를 짓고 스스로 마음에 만족스러운 작품이니 옛사람의 시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아들 하산(夏山) 성세창(成世昌)이 과거에 오르지 못하였을 때였는데, 하루는 공이 하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이 시는 옛사람의 시에 견주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들으니 네 친구 김 아무개가 시의 높고 낮음을 잘 가려낸다고 하니, 네가 하인을 시켜 보통 종이에다 베끼게 하고 그것을 부엌 아궁이 위에 여러 날 매달아 연기에 그을려 오래 묵은 것처럼 만든 뒤, 김 아무개에게 보여 그것이 어느 시대 시인지 물어보아라.”

하산이 자기 집으로 모재를 초청하여 손님방에 같이 앉아 있고, 판서는 안방에 있으면서 벽을 사이에 두고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하산이,

“집의 어른께서는 묵은 책 상자 속에서 이 시를 찾아내셨는데, 이것이 옛사람의 작품임은 알겠네. 그런데 송나라 말엽의 것인지 원나라 사람의 작품인지 분명하게 알 길이 없어 자네에게 감정을 부탁하네.”

하고 말하자 모재는 두 편을 읽어보고 나서,

“이 시는 격이 낮네. 송 말엽의 시는 벌써 아니고, 원나라 시 또한 아닐세, 요즘 작품이네.”

하였다. 그러자 하산이 다시,

“최고운(崔孤雲)이나 이목은의 작품은 아닐까?”

하고 묻자 모재는 이렇게 답했다.

“최고운이나 이목은의 시는 격이 높네. 그러니 그분들의 작품은 아닐 것이고, 분명히 요즘 사람의 작품이네. 그러나 요즘 사람의 작품으로는 매우 훌륭하네. 다른 사람은 아마 이 정도도 지을 수 없을 게야. 내 들으니, 대감(성현)께서 근래 두보의 시를 읽으셨다고 하던데, 만약 정밀하게 생각하고 다듬으시면 이만한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거네. 아마 대감의 작품일 게야.”

판서가 안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는 문을 열고 나와 모재를 보고,

“시를 아는 자네의 눈이 이 경지에까지 이른 줄은 몰랐구나.”

하고 칭찬한 후, 술상을 차려 마주 앉아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파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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