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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이겨낸 홍정승의 의리

재상이 된 홍명하(洪命夏, 1608~1667)가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에는 집안이 매우 가난했다. 그런데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은 홍명하가 반드시 귀하게 될 것을 알고, 맏딸을 그에게 시집을 보내서 함께 살게 하였다.

홍명하는 드디어 처가살이를 하면서 나이 마흔 살이 되도록 평민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지라 보는 사람들이 모두 비웃어댔으나 그렇지만 재상이던 상촌 신흠(申欽)만은 아들 동양위와 더불어 그를 극진하게 대했다.

하지만 동양위의 아들 신면(申冕)은 일찍이 귀한 집에서 태어나 교만하기 짝이 없어, 홍명하에게 투정을 일삼고 멸시해 마지않았다. 하루는 식사 심부름을 하는 노비가 잘 모르고 그의 수저를 홍명하의 밥상에 바꾸어 놓자, 신면은 크게 화를 내면서 노비에게 매질을 했다. 그런데도 홍명하는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으매, 사람들이 모두 그의 넓은 도량에 감복해 했다. 동양위의 병이 위독하여 세상을 떠나려 할 즈음에 안팎의 친족들이 병상 곁에 모이게 되자, 동양위는 홍명하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내 아들 면을 그대에게 부탁하고자 하니, 후에 이 늙은이의 말을 꼭 잊지 말기 바라네.” 하였다. 홍명하가 이에 대답을 하지 않자, 동양위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지금 그대의 대답이 없으니, 우리 집안은 이미 끝났도다.”하는 말을 마치고 곧 숨을 거두었다. 신면은 이 말을 듣고 분개하고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여, 이로부터는 더욱 홍명하를 미워했다.

인조대에 이르러 홍명하는 영상이 되었는데, 당시 인망이 아주 높고 임금의 신임도 두터웠다. 그런데 신면은 역적 김자점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모두 청나라에 몰래 고해 바쳤다. 이에 김자점이 처형되자, 많은 대신들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신면도 처형하도록 청하였다. 이 일과 관련해 홍명하가 새벽에 일어나 대궐로 들어가려 하자, 그의 부인이 맨발로 중문 밖까지 나와 가마를 부여잡고 울면서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임종 시에 부탁하신 말을 틀림없이 잊지 않으셨겠지요” 했다. 그러자 홍명하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종을 시켜 부인을 내당으로 들게 하고선, 가마꾼들을 서두르게 하여 대궐로 향했다.

대궐에 입시하자 임금께서 묻기를, “면의 이 같은 죄는 역적질을 범한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는가?” 하니 홍명하는 아뢰기를, “그 죄상은 크게 무거우나, 그는 선대왕의 자손이요 공주의 아들이온데, 어찌 몸과 머리를 다른 곳에 둘 수 있으오리까?” 하니, 임금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경의 말이 옳소” 하고, 매를 쳐서 죽게 하였다. 이는 곧 홍명하가 동양위의 임종 시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은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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