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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동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홍문리에서 홍문동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주내면(여주읍) 지역으로 홍살문이 있어 홍문골 또는 홍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장촌을 병합하여 홍문리라 했다. 조선시대 중엽, 지금의 여주군청 자리에 목(牧)이 설치되었고 그 앞에 홍문(弘門)이 세워져 그 뒤로 홍문리라 불리게 되었으며. 지금은 마을이 커져 홍문6리까지 분동이 이루어졌다.

  • 면터거리 : 극장거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 주내면사무소가 있었으며 지금은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 건지천 홍문리 길가에 있던 마을이다. 해방 후 길을 넓히면서 폐촌이 됐다.
  • 목수동, 목숙(苜宿)골 : 홍문리에 있었던 마을인데 해방 후 폐촌 되었다. 지금은 상우아파트가 들어서고 홍문6리 지역이 되었다.
  • 이나간 : 홍문리에 있는 마을이다.
  • 잣나무 고개 : 홍문리에 있는 고개이다. 잣나무가 있었으며 현대아파트 앞이 된다.
  • 터우물, 통우물 : 홍문리 여주 지방법원 앞에 있는 우물터이다. 여주읍이 행주형이라 하여 우물 파는 것을 금하여 여주읍민들의 유일한 식수였다. 이후 상수도가 생기고 여주 지방법원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길을 닦느라고 우물 위에 뚜껑을 덮고 포장을 했다.
  • 이 우물은 인조 때 반기를 든 이괄(李适)의 집 안에 있었다 하여 이괄우물터 라고도 불렸으며, 지금의 법원앞 사거리지역이다.
  • 통우물이 있는 마을을 통우물거리라 불렀다.
  • 귀생이골 : 현 여주법원 앞마을로 옛날 이곳에 향교가 있었다 하여 구생교말이라 부르던 것이 귀생이골로 굳어지게 되었다.
  • 극장거리 : 홍문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극장이 있다.
  • 도장골(都藏), 도장동 : 옛날에 가축을 잡던 도살장이 있어 도수장이라 부르다가 점차 도장골이라 불렀는데 마을을 미화하고자 도장(都藏)이라 표기하게 되었다 한다.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야밤에 몰래 도장(盜葬)을 하던 곳이라 한다. 지금 홍문5리 지역의 마을이다.
  • 청심루터(淸心樓) : 지금의 여주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청심루의 터 표석이 있는 곳이다. 그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때 명현 가정 이곡(稼亭 李穀), 목은 이색(牧隱 李穡),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과 조선 때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巨正), 청파 이육(靑坡 李陸),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이락당 신용개(李樂堂 申用漑)등의 여러 명신(名臣)의 현판이 붙어 있고 모두 그 경치가 절묘함을 칭찬하였으며, 대들보가 하나인데 칡으로 되었다 하여 더욱 유명하였다. 그러나 1946년 겨울에 걸인의 실화로 아깝게 소실되고 강변도로를 닦느라고 그 터까지 없어졌다.
  • 여주 도선장(驪州渡船場), 여주나루, 읍나루터 : 홍문리 북쪽에 있는 나루터이다. 북내면 오학리로 건너가는 나루로 여주대교가 개통되면서 폐쇄되었다.
  • 여주역(驪州驛) : 홍문리에 있던 옛 수려선의 기차 정거장이다. 현재의 여주군민회관 뒤에 위치했으며, 1970년대 수려선이 폐선되면서 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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