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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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상동

2013년 9월 23일 여주군이 시(市)로 승격하면서 상리에서 상동으로 개칭되었다.

여주읍내 위쪽이 되므로 웃동네, 상동네 또는 상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대촌을 병합하여 상리라 했다. 옛날부터 한강변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 읍내의 지형이 행주형세(行舟形勢)라 하여 뱃머리에 해당하는 이 마을을 상리라 하게 되었다. 북으로는 남한강과 접해 있고 동쪽의 연양리, 매룡리, 남쪽과 서쪽의 홍문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현재는 상1리, 2리의 두개 리로 분동되어 있다.

  • 이문고개 : 여주읍 상리에서 영월루 가는 쪽, 지금의 여주여종고 앞쪽에 있던 조그마한 고개에 형성 된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 읍내를 드나드는 문이 있었다고 해서 이문고개로 불렀다고 전한다.
  • 송아리 고개 : 꽃봉오리 모양의 고개 길이다. 지금의 여주초등학교 후문부근의 마을이다.
  • 돌고개 : 상리에서 연양리로 가는 쪽으로 지금의 영월루 아래쪽에 있던 자그마한 고개마을이다. 1998년 영월공원 조성 시 이주하였다.
  • 잔다리 : 상리에 있는 마을이다. 작은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텔과 전원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 팔승지골 : 옛날 이 동네에서 여덟 명의 승지가 나왔다 하여 팔승지골로 불렸다. 지금의 여흥초등학교 뒤편이라 전한다.
  • 빙고(氷庫)터 : 지금의 여주여자고등학교 뒤편 한강가 나지막한 야산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조선시대 얼음 창고이다. 지금은 도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없어졌다.

말아우(칼바위), 마암(말바위), 마암대, 민가바위} 영월루 아래 남한강가에 있는 큰 바위다. 물결이 치면 바위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 같은 큰 굴이 있는데 옛날에 큰 황마(黃馬)와 흑마(黑馬)가 나와서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황려(黃驪 : 여주의 옛 이름)란 고을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여흥 민씨의 시조가 이 굴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바위 면에 “마암(馬巖)”이라 크게 새겨져있다. 말아우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설도 구전되고 있다.

옛날 한 어옹이 여강에서 낚시질을 하는데 멀리서 손짓하며 달려오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다급하게 사공을 부르고 있지만 사공이 보이지 않는 터라 어옹은 낚시를 거두고 배에 올라 여인에게로 가게 되었다. 마침 강을 반쯤 건넜을 무렵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 그쪽을 바라보니 그 여인의 뒤쪽에서 험상궂은 사나이가 달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어옹도 재빨리 건너 그녀를 배에 태우려 하자 그때 뇌성벽력이 치며 큰 바람이 몰아쳤다. 그와 함께 어디선지 누런 말과 검은 말이 나타났다. 그러자 여인은 재빨리 누런 말에 오르고 뒤이어 달려온 사나이는 검은 말에 올랐다. 이 때 하늘에 자욱한 물보라가 일어나고 어옹은 흔들리는 배를 붙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잠시 후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어옹은 여인과 사나이가 있던 곳을 바라보니 여인과 사나이는 오간데 없고 그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것만이 보였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 바위에서 누런 말과 검은 말이 솟아났다 하여 마암, 말바위, 말아우라 하고 이 고장의 이름을 황려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여주수원지(驪州水源池) : 상리에 있는 수원지다. 여주읍의 상수도를 공급하는데 1957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수원지 옆에 상수도 정수장이 있었으나 상수도사업소가 매룡리지역으로 이전되면서 폐쇄되었다.
  • 영월루(迎月樓) : 상리 산 126번지 산마루에 있는 정자다. 본래 여주군청(관아)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에 여주군수 신현태(申鉉泰)가 이곳으로 옮겨 세웠으며 1998년 영월공원이 조성되었다.
  • 현충탑(顯忠塔) : 영월루 서쪽에 있는 탑이다. 1950년 6·25 때 전사한 장병 811명의 영령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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