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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명칭의 유래

여주는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영역이었다가 삼국이 성립되면서 처음에는 백제 땅, 나중에는 고구려가 세를 확장하면서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 당시의 고을 이름은 골내근현(骨乃斤縣)으로 불렀다. 이후 신라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여주(당시의 골내근현) 땅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고 경덕왕때 황효(黃驍)라고 고쳤다. 그런데 황효란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알기 쉽지 않으며, 1257년(고려 고종 44)에 지명을 영의(永義)라고 고쳤다가 48년 후인 서기 1305년(고려 충렬왕 31)에 여흥이라 고쳤다.

조선조에 들어와 제 8대 예종 원년(1469년)에 세종대왕의 영릉을 이곳으로 천릉하고 나서 그해 여흥과 인접해 있던 천령현(川寧縣)을 폐합시키고 지명을 여주로 고쳐 현재까지 사용되어 오게 된 것이다. 즉 원래의 여주 옛 지명인 골내근현 시대의 지역은 현재의 여주읍과 능서면 전지역과 가남면, 점동면의 북부 지역, 북내면의 금당천 서쪽 지역뿐인 작은 고을로 인접한 천령현의 속현에 불과했었다. 그 후 1401년에 음죽(지금의 죽산 지역)의 북부 지역 어서이촌 (於西伊村 : 현재의 가남읍과 점동면의 남부지역)을 떼어 여주에 합병시켰고, 1469년에 천령현을 합병시켰으며 1914년에 원주 지역이었던 현재의 강천면 전 지역과 북내면의 금당천 동부 지역을 합병시켰고 1963년 개군면을 양평군으로 떼어 붙인 후 1995년 강천면 대둔리를 마을 주민들의 뜻에 따라 원주시 문막읍으로 넘겨주고 난 나머지 지역이 지금의 여주 전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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