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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 풍물놀이

경기도에서 농악을 풍물(風物)이라 부르고 농악을 연주하는 것을 풍물친다고 한다.

경기농악은 옛부터 걸립패와 남사당패의 기예와 편성이 두드러진 직업적인 풍물대로부터 각 마을마다 작고 큰 형태로 수많은 농악대가 있어 가히 농악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기농악은 지역마다 고사굿, 두레굿을 쳤다. 농악가락에 길군악칠채, 덩더궁이, 삼채장단이 많이 쓰이는 점과 쇠잽이(괭과리), 징잽이, 벅구잽이, 무동(舞童), 샌님광대로 편성되는 점과 잽이들이 모두 나비상을 쓰는 것, 그리고 동네서는 무동이 여럿이고 탈광대가 없고 샌님광대가 많은 것이 경기도 농악의 특징으로 나타난다. 경기농악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직업적인 전문 농악대인 걸립패와 남사당패가 많이 있었으며, 특히 남사당패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그 명맥만 겨우 이어오고 있는 정도지만 한창 성할 때에는 전국의 어느 곳이고 남사당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경기농악이 지금은 많이 도태되어 이제 그 훌륭한 기예나 화려함을 자주 대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의 민속 대개가 지금은 많이 변화되고 소멸되어 예전의 멋과 흥을 찾을 수 없는 것도 문제가 된다. 또 예전의 민속이 연희되던 장터나 강변의 넓은 모래사장, 그리고 초가집이 즐비한 촌동리의 마당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연희된다는 것도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민속놀이는 그 창출조건이 시대적인 배경, 주위의 환경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가며 자연적인 창출의 조건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기예인의 재능 등 인위적인 조건의 혼합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원래의 연희장소가 아닌 곳에서는 그 놀이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민속이 없는 민족, 즉 고유한 전통이 없는 민족은 혼이 없다. 혼이 없으면 그것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36년간의 치하에서 우리의 정신문화인 민속놀이를 말살시키기 위해 일제는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우리 민족은 슬기롭게 그 어려움을 이겨냈다. 이 같은 극복이 오늘날 우리의 민족정신을 가꾸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각 지역마다 놀이의 방법이나 명칭은 서로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것의 모체는 전국의 어느 곳이나 존재하고 있는 풍물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이처럼 지방의 농악은 단합의 힘의 원천으로, 또는 흥으로 멋으로 우리 민족 깊숙히 뿌리내려 정신의 원천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농악이 전수 방법이나 가락의 변형에 의해서 원형이 파괴되고 단절된다는 것은 우리의 민족정신이 파괴되고 변화되고 없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어 지금엔 우리 것을 찾고자 해도 없어져 찾을 수가 없고 흔적을 찾았다 해도 정리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같은 점으로 볼 때 각 지역은 지역 나름의 농악을 정리·전수시켜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 방법만이 지역문화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면 걸립패와 동리농악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걸립패는 서낭기(農旗와 동일)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고사굿을 쳐주고 돈이나 쌀을 걷는 것을 ‘걸립한다’고 하며 이러한 놀이패를 걸립패라 부른다. 걸립패는 흔히 모갑이(걸립패의 우두머리로 상쇠)가 산에서 서낭을 받아 서낭기를 들고 다니며 하는 낭걸립패와 화주(花主)가 절에서 영기(令旗)를 받아서 걸립하는 절걸립패가 있다. 낭걸립패는 절걸립패와 구별지어 부르는 말로 서낭을 받고 다닌다 하여 서낭을 약하여 ‘낭’이란 말을 붙인다. 동제의 굿중패의 경우에는 당산(堂山)에 가서 당굿을 하여 신(神)을 받는 경우와 동네 민가에서 서낭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여주의 낭걸립패는 민가에서 서낭을 받는다.

걸립패의 모갑이는 걸립을 나서기 전에 길일을 택하여 서낭날을 정해 서낭기를 비롯한 풍물을 정비하고, 잽이들을 편성한 다음 날을 받는 날에 소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여 잽이들을 모아놓고 마당 가운데 서낭기를 세운 다음, 그 앞에 제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려 낭을 받는다. 이에 비해 절걸립패는 절의 중창을 위하여 모금하는 걸립패로 절의 탁발승들이 법고와 바라를 치며 나비춤, 바라춤과 같은 탁발무를 추며 고사염불(告祀念佛)을 부르며 걸립을 다니는 경우가 있고, 여기에 여러 놀이꾼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절걸립패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 이러한 낭걸립패와 절걸립패는 그 기예에 있어 다를 바 없고, 오직 탁발승과 함께 서낭기 대신 ‘사건립시주(寺建立施主)’라고 쓴 영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다르다. 낭걸립패와 절걸립패는 기능면에서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낭걸립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경기도 안성·용인·화성·여주 등지의 낭걸립패에서 쓰는 악기는 꽹과리·징·장고·북·법고·태평소 등이며, 간혹 바라나 나팔을 쓰기도 하는데, 이런 점은 충청도 일부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원래 경기농악의 편성은 아닌 것 같다. 낭걸립패의 복색은 등걸잠방이에 삼색띠를 두르고 나비상을 쓴다. 무동은 붉은치마 노랑저고리에 머리를 볶았으며, 샌님광대는 도포에 샌님탈을 쓰고 정자관을 머리에 쓰며 손에는 부채나 지팡이를 든다. 도구로는 영기와 서낭기가 있으며, 영기는 작은 가로 깃대로 2m 정도이며 깃대 끝에는 놋쇠로 만든 일지창이나 삼지창을 달고, 그 밑에는 상모나 백지를 단다.

깃폭은 70㎝ 정도 방형무명으로 만들고, 깃폭 가운데에는 ‘영(令)’자를 쓰고 깃폭가에는 지네발을 단다. 서낭기의 모양은 두레패의 농기와 같으며, 다만 그 길이가 6m 정도로 좀 작고 깃대 끝에는 꿩장목을 달고, 그 밑에는 상모를 달고 가늘고 길게 백지로 여러 가닥 수실을 단다.

낭걸립패의 편성은 영기잽이·서낭기잽이·태평소·쇠잽이(꽹과리)·징잽이·장구잽이·북잽이·법구잽이·무동·탈광대로 되어 있고, 모갑이가 악수(樂首)가 아닌 경우에는 그를 화주(花主)라 하여 따로 세우고 고사반을 하는 비나리는 잽이들이 하기도 하며 따로 두기도 한다.

낭걸립패의 절차는 마을에 들어가기 전부터 많은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걸립절차는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다리굿과 들당산굿을 먼저 치고, 화주가 서낭기를 동반해서 마을의 촌장과 협의하에 마을로 들어가게 되면 샘굿·판굿·집안 고사굿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① 문굿

    고사를 드릴 집이 정해지면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그 집안에 도착하면 자진가락을 친 다음 상쇠가 문굿 고사반을 외치면 걸립꾼들이 함께 소리 지른다.“문여쇼 문여쇼 수문장군 문여쇼.” 또는 “주인 주인 문여쇼 문 안 열면 갈라요.” 등으로 나타난다.

  2. ② 마당판굿

    걸립패들의 순서도 지방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문굿 다음에 조왕굿을 먼저 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마당굿을 먼저 치는 곳이 있는데, 여주 낭걸립패는 마당굿을 먼저 친다. 걸립패들이 마당굿을 치면서 오방연이나 법고놀이 등을 치면 주인은 고사상을 차린다.

  3. ③ 고사소리

    마당굿을 마치면 농악을 일단 그치고 고사소리꾼이 고사상 앞에 서서 고사소리를 부른다. 고사소리는 흔히 상쇠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비나리’라고 하여 고사꾼을 따로 두기도 한다. 고사상은 소반에 말(斗)이나 큰 그릇에 쌀을 수북하게 부어놓고, 집주인의 숟가락을 꽂고 실타래를 걸쳐놓고 촛불을 켜놓으며, 상 한쪽에는 그릇에 정화수를 떠놓고 형편이 되면 돈도 얹어놓는다.

  4. ④ 조왕굿

    고사소리를 마친 걸립패 일부는 부엌으로 들어가 조왕굿을 치며 외친다. “누르세 누르세 조왕님전 누르세”를 외친 일행은 부엌을 나와 터주로 간다. 집안 굿의 진행과정에서 보면 터주굿이 조왕굿보다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순서는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5. ⑤ 터주굿

    집 뒤 터줏가리 있는 곳에서 “누르세 누르세 터주님전 누르세”를 외치고 터주굿을 치는데, 리듬이 모든 것이 문굿이나 조왕굿과 같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장독굿과 마굿간굿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경우는 돈과 쌀을 많이 거두었을 때만 나타난다. 걸립패란 본래 직업적인 걸립을 목적으로 하는 패거리이기 때문에 수익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놀이의 진행과정이나 놀이마당의 기예가 다르게 나타난다.

  6. ⑥ 고사소리[告祀念佛]

    걸립패들이 들어와 마당굿을 치고 있으면, 집주인은 마루에 고사상을 차려놓는다. 흔히 걸립패의 상쇠가 부르는 이 고사소리는 지역에 따라 대청굿이라는 명칭으로도 나타나며, 북잽이는 북을 배에 오게 한 다음 왼손으로 가죽을 치고 오른손으로 북채를 들고 북의 오른편 가죽이나 북통을 친다. 이 고사소리에는 ‘산새풀이(산의 정기가 여러 산맥을 타고 그 집터에까지 뻗었으니 주인댁 집터가 명당이요, 그 명당의 발복으로 집안이 번창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무가에서는 지도서 혹은 명당풀이라고 나타난다)’·‘액풀이(매달 드는 액을 다음달의 명일날 고사반으로 막는 내용)’·‘과거풀이(그 집의 자손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크게 번창한다는 내용)’·‘성주풀이(집안이 번창하고 잘산다는 축원)’·‘농사풀이(온갖 곡식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축원)’ 등으로 나타나며, 이 가운데 액풀이(홍수풀이)와 농사풀이는 흔히 모든 민속의 고사 안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략하고, 여기서는 산세풀이·과거풀이의 일부분만 제시한다.

    산세풀이

    (전략)
    하남산 둘러보니
    지치강이 둘러있고
    충청도 계룡산은
    공주금강이 둘러있고
    전라도 지리산은
    양추강에 둘러있고
    강원도라 금강산은
    동해유수가 둘러있고
    수원하고도 광교산은
    한강이 둘러있고
    서울하고도 삼각산은
    임진강이 둘렀구나
    남산 위에 올라서 제왕의 터를 보니
    여철지 무궁이요 명승지가 예아니냐

    과거풀이

    (전략)
    글란 그리 하려리와
    권명진 모씨댁 옥동같은 귀한애기
    일곱 살이 되었으나 갖은 공불 시켜보자
    어떤 공부 시켰더냐
    하늘천 따지 동몽선습 고본이며
    시전 서전 논어 맹자 다 읽으니
    문장은 태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부모님이 사랑하사 고이고이 기르실제
    마침 시절이 태평하여
    나라에서 경사나
    과거를 보라하고 팔도 각읍 방붙이니
    도련님의 거동보소 부모님전 사배하고
    재수하고 두손 합장 비는 말이
    나라에서 경사나 과거를 뵈라하고
    팔도 각읍 방붙이니 소자도 한양가서
    과거를 보려하니 과거준비 차려주소
    (이하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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