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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계달의 생애와 예술

염계달에 관한 기사는 조선후기 문헌에 더러 보인다. 순조대(純祖代) 무렵의 문장가인 신위(申緯, 1769~1847)가 남긴 「관극(觀劇)」이란 시에 “고송염모일대재(高宋廉牟一代才)”라는 시구가 있고 윤달선(尹達善)의 「광한루악부서(廣寒樓樂府序)」에도 ‘유래고송염모창(由來高宋廉牟唱)’이라는 글귀가 있다. 여기에서 ‘고송염모’라 한 것은 고수관(高壽寬)·송흥록(宋興祿)·염계달·모흥갑의 판소리 명창 4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한 판소리 명창을 기술한 문헌에 염계달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판소리 명창으로서 염계달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판소리 명창 8명을 꼽아 이른바 ‘판소리 팔명창’이라 일렀는데 염계달이 여기에 한 사람으로 꼽혔던 것은 물론이다. 판소리 팔명창이란 순조(純祖) 무렵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 가운데 8명을 지칭하는 것인데 일정하지 않고 꼽는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염계달을 비롯하여 송흥록·모흥갑·고수관·권삼득(勸三得)·신만엽(申萬葉)·김계철(金啓喆)은 반드시 거론하고 나머지 한 명은 황해천(黃海天)·박유전(朴裕全)·주덕기(朱德基) 중에서 하나를 꼽는 것이다.

염계달에 관한 비교적 자세한 기사는 일제시대에 출간된 정로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실려 있어 그의 생애와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1) 염계달이 여주 출신이라는 사실도 아래의 기사처럼 조선창극사에서 밝혀진 것이다.

염계달(혹은 염계량)은 경기도 여주군(혹은 충청도 덕산군) 출생으로 순헌철(純憲哲) 삼조(三朝)를 거쳐온 사람이다.

위 자료를 보면 염계달을 혹 염계량이라고도 하고 또 경기도 여주나 충청도 덕산(德山) 출신이라 하였으나, 김동욱 교수는 염계량은 염계달과 다른 인물이고 염계량은 덕산 출신이라고 하였다. 염계랑이 염계달과 다른 인물이라는 것은 조선후기에 명창들이 올린 상소문인 ‘정해등장(丁亥等狀)’에 적힌 명창들의 명단에 염계달과 염계량이 따로 나오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염계달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순헌철(純憲哲)에 살았던 인물이라 하였기에 그가 순조대부터 철종대(哲宗代)까지 활동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조선창극사』에 의하면 염계달은 어렸을 때 재주가 있고 십여 년을 공부하여 명창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청도 음성의 벽절(甓寺: 지금의 신륵사)에서 공부하였고3) 10년 동안을 밤에 잠이 오면 상투에 끈을 달아서 천정에 매고 독실하게 공부하여 그 명성이 일세를 풍미하였다. 그리고 조선 헌종대왕의 부르심을 받고 어전(御前)에서 누차 소리를 하는 큰 영광을 누렸고, 왕의 총애를 입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의 관직(官職)을 제수받았다. 또한 소리가 가경(佳境)에 들어가면 경우에 따라 듣는 사람을 능히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하였는데, ‘장끼타령’과 ‘흥보가’에 특히 능하였다. ‘장끼타령’은 판소리 열두 마당의 하나이지만 지금은 전승이 끊어진 실정이다. 만년에는 충주에서 여생을 보냈다.

염계달이 어느 명창을 선생으로 모시고 소리를 배웠고, 어느 명창을 제자로 가르쳤는지는 분명히 알 길이 없다. 다만 『조선창극사』에 염계달이 팔명창의 하나인 권삼득의 소리를 모방하였다고 한 것으로 봐서 권삼득의 영향을 받은 것 같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리고 역시 팔명창의 한 명인 고수관이 염계달의 창법(唱法)을 많이 모방한 것으로 봐서 고수관이 염계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것은 고수관의 더늠인 ‘춘향가’의 ‘자진사랑가’가 염계달의 더늠인 ‘춘향가’의 ‘네 그른 내력’과 같이 ‘추천목’으로 된 데서 나온 추측인지도 모른다.

한편 염계달은 경기도 명창이라 경기도 소리제를 판소리에 적용하여 소리를 짠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판소리 명창들은 염계달 소리제를 소리할 때, 흔히 ‘염계달 경드름’ 또는 ‘염계달 추천목’이라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경드름’이라 하는 것은 일명 ‘경조(京調)’ 또는 ‘경제(京制)’, ‘경토리’라 이르는 ‘판소리조’로 ‘창부타령’, ‘방아타령’과 같은 경기민요의 소리제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추천목’이라 하는 것은 한강수타령, 경복궁타령과 같은 경기 민요의 소리제에서 나온 것이다. 명창들이 흔히 이르기를 이는 염계달이 경기도 명창이라 판소리에 경기도 소리제를 집어넣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판소리 명창들이 그들의 소리에 경드름과 추천목을 끼어서 소리를 짜고, 또 산조 명인들이 그들의 산조에 경드름을 끼워 산조를 짜는 것으로 봐서 염계달이 우리 음악사에 미친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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