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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

1970년대까지는 여주지역에도 경을 읽는 법사의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볼 수 있었다 한다. 여주에서 법사들은 주로 경(經)쟁이나 독경(讀經)쟁이 등으로 불렸다. 이들에 의해 행해지는 의례는 앉은거리로 불리며, 대개의 무당들이 서서 굿을 하는 것에 비해 앉아서 경문을 읽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여기서 법사는 경을 읽는 법사로서, 주로 소경인 판수를 의미한다. 이들 소경법사들은 요즈음 남성들이 강신(降神) 체험을 한 후 경문을 배워 무당이 된 부류들을 일컫는 것과는 구별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소경법사들은 경문을 배우거나 점치는 것을 배워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요즈음 주로 활동하는 여주지역 법사들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나 경문을 배워 법사가 된 것이 아니라, 강신체험을 통해 무당이 된 사람들로서, 이들도 경문의 학습과정을 거친 후 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즘 활동하는 이들 법사들과 소경으로 태어나서 법사가 되었던 사례들과는 구분이 필요하다.

소경인 사람들이 점을 치거나 독경의례를 했던 것은 고려나 조선시대의 여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점을 치는 맹인을 관리로 등용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개국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모방하여 관상감(觀象監)이라는 정삼품의 관서를 두고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수(易數), 점주(占籌), 측후(測侯), 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시켰다. 관상감은 2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점서(占筮)의 일은 명과(命課)라 일컫고 점복에 능한 맹인으로 하여금 이 일을 맡게 하였다.1)

한편 맹승단체인 명통사(明通寺)가 있었는데, 여기에 속한 맹승들의 칭호는 선사였다. 나라에 가뭄이 있으면 맹승을 시켜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거나, 질병이 번지는 경우에도 이들을 시켜 기도하게 했다.2) 이때 이들은 독경을 하기도 하고, 축수를 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이렇게 국가적 차원에서만 활동한 것이 아니라 민가에서도 활동하였을 것으로, 소경판수의 기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독경의례는 도교와 불교, 무속의 양상이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점과 독경을 위주로 하던 소경판수들은 무당과는 별개의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들의 독경의례도 굿과는 달리 독자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무속의 테두리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여주지역에서 활동중인 소경판수의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강신체험을 통해 무당이 된 남성들이 경문을 학습해 앉은거리를 하고 법사로 불리며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주지역의 소경법사로는 번도 5리의 나용삼의 사례가 유일하다. 1989년에 발간된 『여주군지』에는 나용삼의 무가가 소개되어 있다. 현재 나용삼은 수년 전 번도 5리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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