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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기우제

농경을 생업으로 하여온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다. 그래서 매년 농사를 짓는 이들은 비와 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였다. 다행히 여주는 역사적으로 자연재해의 피해를 크게 입은 적이 별로 없는 복 받은 땅이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게 계속되어 농사에 지장이 있을 때는 하늘을 우러러 비[雨]를 바라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우리나라는 아득한 옛날 삼국시대부터 조정은 물론 지방관청, 민간을 막론하고 가뭄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 비를 바랐으며, 이러한 기우제는 심할 때는 임금이 정치를 잘못한 벌이라 하여 왕 스스로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식음을 전폐하고 초가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죄인을 석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로는 ‘태종우(太宗雨)’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그 밖에도 여러 왕들이 이렇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민가에서는 하지(夏至)가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아서 한재(旱災)가 예상되면 지방의 유지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내기 위한 날을 결정하는데, 제일(祭日)이 결정되면 2~3일 전부터 모든 가정에서는 대문에 금줄을 드리고 그 금줄에는 소나무 가지를 잘라 거꾸로 꿰어 매단다. 그리고 대문 양쪽에 세 군데씩 황토를 펴놓고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금지시킨다. 이때 마을주민 가운데 부정이 없고 정성이 있는 노인으로 제관(祭官)을 정하고 제사 3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부정을 피했다가 제사에 임하도록 한다. 제수(祭需)로는 돼지머리, 과실, 포, 떡 등을 진설해 놓고 한밤중에 거행한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축문을 낭독하고 소지를 올리는데, 소지가 잘 타올라야 기우제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때 부녀자들은 머리를 감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기우제가 끝나면 물병에 소나무 가지를 꺾어 꽂은 다음 그 물병을 대문 기둥에 거꾸로 매달았다. 또한 부녀자들이 개울에 나가서 키로 물을 까불면 비가 온다고 하여 부락의 모든 부녀자들이 모두 개울에 나가 집단적으로 물을 까부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기우제는 여주에서도 이따금 행해졌다. 대신면 천서리에서는 비가 안 오면 파사산성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한편 점동면 원부리에서는 1990년대 초 비가 안 오자 조합 마당에 제단을 만들고 조합원들을 모아놓고 조합장이 제관이 되어 기우제를 지낸 적이 있다. 당시 조합장이었던 권영상은 “기우제를 지내는데 조합 마당에다가 무대를 만들고 옷 인제 다 조합원들 다 오라고 해서, 제관은 제가 인제 의관 갓 쓰고 해서 축(祝) 하고 축문 읽고, 하느님께 고축하고 백성들이 살기에 불편하니 비를 내려주십시오 하는 뜻의 고축을 하고 그 다음에 참제하고 조합 임원들 다 참제시키고 다 빌고 그래서 인제 조합원들하고 다 끝난 다음에 음복하고. 술 마시고 꽹과리 치고 놀고, 기우제 한번 지냈어요”라고 증언한 바 있다.

밤에 여인네들이 키를 들고 냇가로 나가 물을 까부르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던 풍속은 여주의 여러 마을에서 널리 행해져왔다. 비를 바라는 여인네들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의식과 달리 능서면 마래리의 기우제는 독특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마래리 노인회장 변명식의 증언이다.

여주에서는 비가 오지 않으면 고을의 목사가 부덕(不德)해서 하늘이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라 여겼다. 목사(牧使)는 자기 잘못으로 여기고 정성껏 목욕을 재계하고 3일을 근신한 후 정결하게 떡을 만들고, 돼지를 잡아서 제물을 준비한다. 준비가 끝나면 고을 수장이 제사를 지낸 다음 제비여울(잔여울)에 묻혀 있는 치맹나무를 꺼내는 흉내를 낸다. 치맹나무는 육지에서 천 년을 크고, 땅속에서 천 년을 묵고, 물 속에서 천 년을 묵으면 나무의 결이 없어지고 고귀한 나무가 된다. 이런 삼천 년 묵은 치맹나무는 하늘이 내린 나무로 물 속에 있는 것을 건천으로 건져내려 하면 하늘이 노하여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래서 여주에서는 날이 가물면 인근 남자들은 동아줄을 틀어서 치맹나무를 가지에 걸고 나무를 꺼내는 시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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