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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

금사면 이포리에서 3년에 한 차례씩 행해지는 삼신당(三神堂) 당굿은 여주에서 행해지는 당제(堂祭)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랜 것이다. 6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이포리 삼신당 당굿은 그 규모가 대단히 커서, 과거에는 인접 부락에서도 수천 명이 몰려 조그마한 동리의 산이 온통 사람으로 가득 찼으며 삼현육각을 잡히고 줄 타는 광대까지 불러들여 고창놀이를 일주일 이상을 하였던 바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음력 3월 초에서 보름 사이에 길일을 택하여 치성을 드려 온 이포리 삼신당 당굿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삼신당 당굿은 산신(山神)을 주신(主神)으로 중앙에 모시고 좌우에 성황신(城隍神)과 용왕신(龍王神)을 모신 삼신당에서 지낸다.

삼신당은 ‘삼선당(三僊堂)’이라고도 불리는데, 삼선당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옛날에 지금의 이포리를 중심으로 한 인근 부락에 마마가 창궐하였는데,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로서는 집집마다 전염되어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고, 날마다 동리에 곡소리가 그치지를 않았다. 그렇게 되자 동리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동리 촌장(村長)이 꿈을 꾸니 나옹선사가 나타나 “충청도 계룡산에 가면 초가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초가집 안에 세 노인이 있을 것이니 그 노인들에게 말씀을 드리라”고 일러주었다. 촌장이 깨어보니 꿈인지라 며칠을 걸려 계룡산에 가보니, 초가집이 한 채 있고 집 안에는 세 노인이 담소하고 있었다. 촌장은 무릎을 꿇고 세 노인에게 동리가 처해 있는 사정을 이야기하자, 세 노인은 가서 도와줄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하였다. 이에 촌장이 이포로 돌아와 그 세 노인을 모신 후부터는 동리에 질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1)

이포리의 삼신당 당굿은 최근 2002년 5월 8일부터 10일(음력 3월 26일~28일)까지 사흘간 치러진 바 있다. 이해에 행해진 당굿은 이포1리와 이포 2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삼신당 당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들의 주도로 치러졌다. 이포 1리와 2리의 이장과 부녀회장 및 추진위원들로 구성된 삼신당 당제추진위원회에서는 4월 20일 최상열 씨를 당주(堂主)로 추대하고, 4월 21일 1차 모임을 개최하여 구체적인 행사계획과 예산을 토의하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후 추진위원회에서는 여주군청과 문화원 및 양평문화원에 협조를 구하고, 줄타기 공연자 홍기철 집을 방문하는가 하면, 지역기관장들을 초대하여 협조를 구하는 한편, 임춘수 법사에게 당굿의 주관을 부탁하는 등 행사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준비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청년회의 도움을 얻어 용왕제에 쓸 뗏목을 제작하고 부녀회의 도움으로 접대음식을 준비하는 한편, 안내장과 현수막을 만들고 음향기기를 대여·설치하는 등 행사에 필요한 여러 사항을 점검하였다.

이와 같은 준비를 거쳐 마침내 5월 8일 여주군수와 경찰서장, 농협군지부장, 금사면장, 조합장, 파출소장, 지서장 등 관계 인사들과 여러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정풀이를 시작으로 당제가 봉행되었다. 오전에는 과거에도 몇 차례 삼신당 당굿을 맡은 바 있는 임춘수 법사의 주관으로 당굿이 봉행되었고, 이어 오후에는 예능보유자 홍기철의 줄타기와 양평군 국악협회 풍물단의 사물놀이, 국악인의 민요공연이 이어져 흥을 돋우었다. 둘째날인 5월 9일에는 승전놀이와 장군놀이 등이 봉행되었으며, 오후에는 역시 줄타기와 사물놀이, 민요 공연이 이어졌다. 셋째날인 5월 10일에는 여강에 뗏목을 띄우고 용왕제를 봉행하였다. 이렇게 사흘간 진행된 삼신당 당굿은 KBS 이벤트 코리아 제작팀이 준비과정에서부터 당굿의 봉행에 이어 뒷마무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촬영하여 5월 23일 방송을 통해 소개하기도 하였다.

당굿을 치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용된다. 기본적으로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상을 잘 차려야 하는데, 여기에는 소머리와 소족(足)이 필요하고, 떡도 몇 시루를 해야 하며, 돼지도 두어 마리 잡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굿을 주관하는 무당들에 대한 사례, 줄 타는 사람과 풍물패, 민요를 부를 국악인들과 악사(樂師)들에 대한 사례도 지불해야 한다. 그 밖에도 뗏목을 만들고 접대 음식을 준비해야 하며, 행사를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이들 비용은 이포리 주민들이 가가호호 호당 쌀을 얼마씩 걷어서 충당하고 상인들이 찬조금을 내어 마련해 왔다.

삼신당 당굿에는 이포나루와 상호리 금광으로 번창하였던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기도 하다. 마을주민이 대동 합심하여 치성을 드리는 외에,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광대의 줄타기와 남사당 사물놀이, 민요와 그네타기 등이 열리는 등 전통적인 민속축제마당으로 자리잡은 삼신당 당굿은 번영을 구가하였던 천양(川陽)의 토속적인 민속문화를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강에 떼배를 띄우지 않게 되고 이포대교가 놓이면서 육로 교통이 활발해지는 대신 수로를 통한 물자의 수송이 사라지고, 금광이 폐광되면서 이포리는 이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포리는 주민과 상인들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삼신당 당굿(고창) 또한 예전처럼 성대하게 치러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금사면 이포리의 삼신당 당굿은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성대하게 치러져온 자랑스러운 여주의 문화유산이다. 다만 삼신당 당굿과 관련해서는 작은 논란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당호(堂號)를 둘러싼 문제이다. 지난 2002년에도 당주인 최상열은 삼선당(三僊堂)이 옳다고 주장하고, 추진위원인 김봉우는 삼신당(三神堂)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주민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쉽게 단안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4년 7월에는 당호를 둘러싼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는데, 삼신당의 당호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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