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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면 적금리 장승제

적금리는 조선 초기 이 마을 일대에서 금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적금(積金)이라고 하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마을에 질병이 많아 장승을 세워서 재앙을 막았다고 해서 붉을 적자를 써서 적금(赤今)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적금리에는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오고, 다음으로 의령 남씨가 들어왔다. 지금은 이 밖에도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고 있는 각성바지 마을이다. 적금 2리의 마을신앙은 장승고사라고 부르는 장승제이다.

적금 2리에서 장승고사를 지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는 원래 장승이 없었다. 마을에 있는 집들이 향하고 있는 좌향, 즉 남쪽을 바라보면 산 능선을 쭉 따라 내려오다가 끊기는 곳이 있고, 그곳으로부터 뚝 떨어져서 작은 산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을 ‘딴동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딴동산은 합천 이씨 소유였다.

아주 먼 옛날, 합천 이씨네 집안에서 상(喪)을 당했는데, 장지(葬地)가 딴동산이었기 때문에 묘소를 그곳에 쓰게 되었다. 그런데 상중(喪中)의 어느 날 남루한 모양새를 한 사람이 찾아와서는 상주(喪主)를 만나기를 청했다. 상주를 만나게 해주자, 문득 그 사람은 상주에게 “땅을 파 보면 돌이 나올 것이오. 그 돌을 절대로 꺼내지 말고 돌이 나오는 깊이 만큼만 땅을 파고 그 위에 관을 얹어서 묘소를 만드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상주로서는 돌 위에 관을 얹어놓은 채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를 쓸 수는 없으므로, 돌을 들어내고서 묘를 쓰겠노라고 했다.

마침내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보니 정말 그 사람의 말대로 커다란 돌이 나왔다. 그러나 상주의 말대로 돌을 파내려고 땅을 팠는데, 그 순간 돌 밑에서 밝은 빛을 발하는, 금두꺼비 같은 것이 하얀 연기를 피우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합천 이씨네는 결국 이곳에 묘를 썼고, 그 뒤 합천 이씨네는 집안이 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 묘를 쓴 그 해부터 적금 2리에는 돌림병이 돌기 시작했고, 이 병으로 말미암아 마을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마을노인들이 용하다는 어느 절의 스님을 찾아가서 마을에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 스님은 마을을 한번 살펴보더니, 딴동산에 묘를 써서 마을에 돌림병이 도는 것이라고 하면서, 남의 산소를 파낼 수도 없는 일이니, 딴동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줄 테니 그곳에 장승을 세우고 정월 열나흘날 자정에 쌀 한 되건 반 되건 상관없이 집집이 똑같이 거두어 가지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면 그런 일이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 정월 열나흘날 밤 장승고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고사를 지내자 그 뒤로는 마을에 돌림병이 사라지고 무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스님이 일러주었던 자리가 바로 현재 장승이 서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적금 2리의 장승제는 그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1)

적금 2리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 해가 넘어갈 무렵이 되면 장승제를 지내는데, 장승은 2년에 한 번씩 새로 만들어 세운다. 대개 장승은 제주(祭主)로 선정된 사람이 산에서 새집이 없고 갈라지지 않은 나무를 골라 장승 만들 재목을 정하고, 열나흘날 낮에 제주 집에서 목수로 하여금 깎아 만들게 한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둘을 만드는데, 여느 장승과는 달리 매우 소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장승 모양으로 나무를 깎은 뒤 눈과 코, 입을 붓으로 그려 넣고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라 써넣는 정도로 그치고 있어 예술적 기교보다는 장승에 대한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승을 새로 세우게 되면 기존에 있던 장승은 제주가 술을 떠놓고 뽑아버리는데, 뽑은 장승은 서 있던 자리 뒤편에 눕혀놔 썩게 둔다.

제관은 1명만 뽑는데, 생기복덕을 가려 좋은 사람을 선출한다. 대개 정월 초닷새쯤에 대동회(大同會)에서 선출하는데, 가족 모두의 생기복덕을 본다고 한다. 제관으로 선출되면 장승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쯤 장승이 서 있는 곳과 자신의 집에 금줄을 치고 외부출입을 삼가며 고사를 준비한다. 제물은 제관이 직접 준비하는데, 떡(백설기 한 시루)·통북어 한 마리·밤·대추·곶감·술 등을 준비한다.

고사를 지내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열나흘날 저녁 6시경이 되면 제관은 제물을 가지고 장승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예전에는 마을의 풍물패가 마을을 돌며 풍물을 쳐서 길놀이를 하였으나, 지금은 방송을 해서 주민들에게 알린다고 한다. 제관은 장승 앞에 제물을 진설하고 향을 피운다. 그리고 제관이 술잔을 두 번 올리는데, 이는 할아버지 장승과 할머니 장승 각각에게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 번만 올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제관이 재배하고 소지를 올리는데, 마을의 안녕과 번영, 무사함을 기원하는 대동소지를 먼저 올리고, 마을의 대표인 이장에 대한 소지와 각 개개인의 소지를 차례로 올린다. 이렇게 해서 고사가 끝나는데, 끝난 뒤에는 장승의 머리 위에 한 주먹 분량의 떡을 얹어놓고 떡에 꽂아두었던 북어를 장승에 매달아 놓는다.

고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제관집에 모여 제물과 더불어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먹는다. 고사를 지내는 데는 비용이 20만 원 정도 드는데, 마을의 기금을 제관에게 주어 차리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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