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의 비상 여주시 여주시사

HOME 주제 민속 의식주 및 생업민속 생업민속 상업민속 상업관행-5일장

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상업관행-5일장

여주의 5일장은 여주읍, 금사면, 가남읍, 대신면 등 4곳에 개설되고 있다.1) 여주장은 매달 5, 10일에 여주읍 상리에서 개설되며, 여주 내 5일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금사면 이포장은 매달 1, 6일에 열며, 과거에 비해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장에 들어오는 상인들도 20명이 넘지 않는다. 가남면 태평리의 장은 매달 1, 6일에 열려 이포장과 같은 날에 열며, 보통 ‘태평리장’으로 불린다. 대신면 율촌리의 장은 매달 4, 9일에 개설된다. 규모는 가남장과 비슷하다. 그 밖에 2002년 4월까지 ‘점동장’이 점동면 청안리 소재 점동프라자 앞 공터에서 매달 3, 8일마다 개설되었지만, 여주장과 장호원장이 인근에 있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주변 상설점포 상인들의 반대로 현재는 폐장되었다. 또한 과거 여주에는 점동면 청안리에 청안장, 흥천면 효지리에 흥천장, 북내면 주암리에 주암장, 북내면 당우리에 당우장 등도 있었다. 청안장은 1980년을 전후로 없어졌고, 또 일제 때 생겨난 주암장과 광복 후에 신설된 당우장은 1970년대 초에 폐지되었다.

여주는 『택리지』에서 “읍과 촌락이 평야를 통하여 동남쪽이 확 틔어서 맑고 상쾌하다”고 할 정도로 쌀의 수확량이 이천시와 함께 많은 곳이다. 이 같은 경향은 오늘날에도 그러하여 여주는 농업을 주업으로 한다. 아울러 한때는 논농사뿐만 아니라 콩, 밀, 고구마, 감자 등 밭작물도 적지 않게 생산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하천 부지에다가 땅콩과 원예작물 재배가 성행하였다. 오일장은 1970년대까지 인근의 원주·이천·장호원의 장을 아우르는 큰 곡물장이 성업을 이루었다.2) 남한강을 끼고 앉아 있기 때문에, 수운에 의지하던 시절 장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이름난 쌀 말고도 콩·밀 같은 잡곡이 여주장에 많이 나와 곡물전은 당시 언제나 흥청댔다고 한다. 그래서 곡물전이 열리는 오일장 근처에는 거래가 끝난 후 한잔 걸칠 수 있는 주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원예작물 재배가 늘어나고 쌀을 자급자족하면서 곡물전의 성업은 점차 약해져 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여주장은 곡물전 대신 고추나 채소를 파는 채소전이 활발히 열렸다. 여느 지방과 마찬가지로 가을에는 고추가 인기 작물로 여주장을 가득 채웠다. 여주장은 대체로 상설시장이 있는 중심거리를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나란히 2개의 거리로 형성되어 있다. 상설시장 중심거리가 여주장에서는 가장 좋은 길목이다. 채소에서 과일·신발 같은 공산품까지 이쪽에 자리를 잡았다. 제일 끝에는 닭이나 개를 사고 파는 가축전이 열린다.

금사면 이포리의 ‘이포장’은 여주에 개설되고 있는 5일장 가운데 가장 적은 규모로, 2003년 말 현재 장자리가 12개 이내에 불과하다. 이포리는 조선시대에는 조운선이 드나들던 곳으로, 나루터와 매달 1, 6일에 개설되던 ‘천령(川寧)장’이 있어 상업이 번성하였다. ‘천령장’이라 부른 까닭은 이곳이 조선시대 천령현에 속했기 때문인데, 주민들은 천령으로 부르기보다는 ‘천양(川陽, 天陽)’이라고 하며 ‘제일천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따라서 천령장 역시 ‘천양장’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았다. 『조선(朝鮮)의 시장경제(市場經濟)』에도 1926년 당시 이포장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포장에는 큰 우시장도 있었다. 그러나 포구마을로서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이곳도 마을 뒤편으로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마을내부 도로의 기능이 축소되고 1991년 12월에 이포리와 대신면 천서리를 잇는 이포대교의 개통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현재의 이포장은 2002년 1월 개설되었고, 장날을 과거 천양장의 전통을 이어 매달 1, 6일로 정해졌다. 이포장은 당시 마을의 젊은 층들이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 장을 세워달라고 요청하였고, 의뢰를 받은 상인들이 인근 장을 다니면서 이포리에 장이 선다는 사실을 알리고 1, 6일에 출시하는 장이 없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구색을 맞춰서 팀을 꾸렸다. 그래서 개설 초기에는 장자리가 30자리 가까이 되었고, 장날이면 주민들도 소량의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판매를 하였지만 교통의 편리함으로 인해 점차 장이 쇠퇴하여 현재는 12자리 안팎으로 꾸려지고 있다. 그러나 상인이나 마을주민 사이에는 인정이 남아 있으며, 마을을 찾는 상인들도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마을주민들과의 약속과 장이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장을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12월 말 이포장에는 11개의 장자리가 펼쳐졌다. 품목은 다른 지역의 장에서도 볼 수 있는 생과자·채소·과일·이불·잡곡·생선·옷·강냉이·분식·그릇·뻥튀기상인 등이다. 상인들은 서로 중첩되지 않는 품목들을 판매한다.

장은 자리가 좋아야 장사도 잘되는 편이며, 자릿세도 자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여주장의 경우 1평방에 자리가 좋으면 권리금조로 170만 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포장에는 자리세가 없는 편이며, 또한 장자리가 적고 제각기 다른 품목의 상인들이 자리를 잡다보니 좋고 나쁨의 차별이 없다. 상인들에 따르면, 장 개설 초기만 하더라도 장자리가 길게 늘어졌으나, 수입이 점차 줄어들자 하나둘씩 상인들이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소득도 작년에 비해 30~40% 감소하였다.

이포장은 규모는 적지만 여느 장처럼 상인회가 구성되어 있다. 여주장의 경우 상인들이 매달 5천 원에서 1만 원의 상인회비를 내지만 이포장에는 그러한 규칙은 없다. 단지 상인회는 월 몇천 원의 돈을 거둬 노인회관이나 불우이웃들에게 약간의 선물을 하는 정도이고, 일반 상인들을 막는 것이 상인회의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러나 이포장의 경우 더 이상 상인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상인들 사이에는 “이포장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상인들은 장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장사와 상관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상인은 장사와 관련 없이 시간을 즐기는 자도 있다.

장의 대목은 역시 명절이다. 농사철에는 사람들이 바빠서 장을 찾는 이들이 없지만 추석 등의 명절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상인들이 “10월을 보고 5리를 걸어간다”는 말도 추석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편 장에서 잘 팔리는 품목은 고등어, 명태 등의 생선과 계절 과일이다.

이포장은 위기의 기로에 서 있다. 가정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 손쉽게 여주읍이나 장호원, 멀리는 서울까지 가기 때문에 생일이나 회갑 등 큰 잔치가 있는 경우에는 그쪽에서 물건을 구입한다.

맨 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