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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농기구의 변화

지금까지 여주 지역에서 썼던 농기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위의 농기구 중 대부분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낫·호미·괭이·삽·절구·발·체·키·소쿠리·광주리 등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여지고 있다. 새로운 동력농기계가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농기구가 사라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농기계의 사용은 농촌의 농사기술, 노동형태, 생활양식, 의식구조, 세시풍속, 민속놀이, 농경의례, 농경신앙 등에 변화와 소멸을 초래하였다.

경운기가 1962년 국내기업에 의해 국산화되면서 갈이 연장·삶는 연장·물대는 연장·운반 연장 등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이 등장하면서 매는 연장·거름주는 연장, 탈곡기가 들어오면서 터는 연장, 건조기와 비닐이 등장하면서 말리는 연장, 콤바인이 등장하면서 알곡 및 가루 내는 연장, 화학섬유 포대가 등장하면서 갈무리 연장 등이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다. 농기계의 사용은 전통 농기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노동형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두레와 같은 공동작업으로 모내기·관개(灌漑)·김매기·수확 등이 이루어졌고, 농민의 노동력을 상호교환하는 품앗이도 사라지게 되었다. 농민들이 말하듯이 “논농사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삶고, 이양기로 벼를 심고, 제초제 농약을 뿌리고, 콤바인으로 거두어들이면 된다. 무더운 여름에 품앗이를 통해 김을 맬 필요도 없어졌고, 더불어 ‘호미씻기’라는 세시풍속도 자리를 감추고 말았다.

또한 공동 모심기, 가래질 등이 사라짐으로써 농민들의 공동체 의식도 와해되고 말았다. 쟁기와 써레·마차가 사라지면서 농가의 소 사육도 감소하였고, 지금은 일소(耕牛)보다는 비육우(肥肉牛)로 바뀌었다. 코뚜레를 건 소를 볼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밖에도 우리네 민요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요가 소멸되고 있으며, 재래 농기구와 관련된 명칭 등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따라서 60~70살이 된 노인들이 쟁기의 세부 명칭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농기계의 구입으로 농민들은 많은 경제적 부담이 지게 되었다. 어느 농가의 경우 경운기· 이앙기·콤바인·SS기·분무기 등 농사와 과수원을 하기 위한 기계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예전에는 국가보조 부담금이 40%이었으나, 지금은 국가보조금이 20%로 감소하여 농기계를 구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어느 기계는 사용하는 기간이 한정적으로 짧고, 수명도 3년을 넘을 수 없어 농가로서는 다시 구입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찮은 편이다. “농기계 융자가 끝나면 기계 수명도 다하는 것이다”라는 농민들의 말이 이를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여주의 농가에서 보유한 농기계로는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 바인더, 콤바인, 분무기, 살분무기, 탈곡기, 파종기, 관리기 등이 있다. 경운기는 한때 농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동력기계로 모든 농가가 기본적으로 소유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다보니 경운기 소유량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여주의 2001년도 통계를 보아도 1996년에는 7천 대에서 2001년에는 6천 대 단위로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와 반해 증가추세를 보이는 농기계는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관리기 등이다. 트랙터는 쟁기 대신 논, 밭갈이에, 이앙기는 논에서 파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농기계이다. 관리기는 구조가 간단하고 가벼우며, 좁고 낮은 공간에서도 작업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작이 간편하고, 경운, 중경제초, 비닐피복 등 여러 가지 용도에 쓰인다. 1996년에 809대이던 관리기는 2001년에는 1,322대로 500대 이상이 늘어났다. 콤바인은 수확한 곡식알은 그대로 탱크에 저장하거나 부대에 넣는 기계로 수확을 편리하게 해준 기계이다. 1996년 1,320대에서 2001년에는 1,630대로 크게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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